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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 에세이 - 내 아이가 살아갈 세상에서 인간됨의 ‘조건’
‘Z세대와 살아가기’

발행 2020년 02월 14일

박선희기자 , sunh@apparelnews.co.kr

 

박선희 편집국장
박선희 편집국장

 

사내와 소년의 중간 어디쯤 있는 나의 아들이 여전히 깔깔거릴 때가 있다. 어떤 때는 침대를 이리저리 뒹굴기까지 한다.
바로 유튜브 영상을 볼 때다.
그 웃음소리가 좋아서, 그리고 내 상식의 교체를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가끔 아이 옆에 누워 함께 동영상을 시청하다 보면 나 역시 낄낄대게 된다.

[어패럴뉴스 박선희 기자] 나의 아들은 초등 5학년 겨울 방학 때 변성기가 왔다. 변성기를 겪어 본 적이 없는 나는 막연히 목소리가 서서히 변해갈 것이라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웬걸. 노란 병아리가 햇볕 아래서 짹짹거리듯 사랑스럽던 목소리가 어느 날 하루아침에 중저음의 보이스로 바뀌어 있다는 사실에 나는 그만 기겁을 하고 말았다. 이럴 줄 알았다면 동영상을 많이 찍어둘걸, 목소리를 녹음해둘걸 하는 아쉬움이 한참이나 갔다.


그리고 몇 개월 후 아이의 키는 나를 넘어섰고, 저녁 한 끼에 소고기를 한 근씩 먹어치우는 상황이 잦아졌다. 그때부터였다. 일상의 피로를 씻겨주던, 아이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도 좀처럼 듣기가 어려워졌다.


그런데 그 사내와 소년의 중간 어디쯤 있는 나의 아들이 여전히 깔깔거릴 때가 있다. 어떤 때는 침대를 이리저리 뒹굴기까지 한다. 바로 유튜브 영상을 볼 때다.


그 웃음소리가 좋아서, 그리고 내 상식의 교체를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가끔 아이 옆에 누워 함께 동영상을 시청하다 보면 나 역시 낄낄대게 된다. 그러면서 슬쩍 묻는다. “욕하는 애들은 없어?” “엄마, 요즘은 욕하면 폭망해요. 저번에 회원이 100만 명 넘는 유튜버가 밀가루 뿌리고 욕했다가, 지금 몇 명 안 남았어요.”


어느 날인가는, 사뭇 쓸쓸한 표정의 아이가 “영어를 가르치던 찰스 쌤이 미국으로 돌아가셨어요.”라고 하더니, 며칠 후 싱글싱글 웃으며 핸드폰을 보여준다. 찰스 쌤과 페이스북 친구를 맺고 대화를 나눈 내용이었다. 요즘 내 아이는 카톡단톡방보다 페이스북에서 친구들과 논다. 아이는 그 세상에서 국경을 넘고, 세대를 넘는 관심사를 나눈다. 여전히 부작용들이 걱정되지만, 일단은 접어두기로 했다.


가끔씩은 깜짝 놀라게 ‘지적인(?)’ 발언을 할 때가 있는데 대부분 유튜브에서 시청한 것들이다. 그러면 나는 잽싸게 그와 관련한 책을 사서 밀어 넣는다. “엄마, 우주에 블랙홀이 왜 생긴 줄알아요?”하면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놓아주는 식이다. 그러면 적어도 서문과 1장까지는 읽는다.


아이가 플랫폼 세상을 통해 재미와 정보, 소통과 공정함의 룰을 배워가듯, 엄마라는 존재 역시 타협도 하지만 진화도 한다.


우리 집엔 룰이 몇 가지 있다. 밥을 먹을 땐 핸드폰을 보지 않는다. 그리고 8시 뉴스는 부모와 함께 꼭 본다. 밥을 먹을 때 나마 서로의 얼굴을 보자는 뜻이고, 8시 뉴스는 세상을 배우고 토론하는 장으로 쓰인다. 아이는 엄마가 자신의 세계를 비교적 이해하는 쪽으로, 노선을 갈아탄 이후 그 룰을 비교적 잘 지켜준다.


얼마 전 우연히 읽은 기사에는 인류가 디지털기기 문명의 발달로, 지적 능력이 저하됐다는 연구 결과는 아직까지 어디에도 없다는 내용이 실려 있었다. 반면 언제 어디서든 사람과 정보에 연결되는 플랫폼의 발달로, 인간이 하루에 소화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은 엄청나게 늘었고, 특정계급의 전유물이자 권력이었던 지식과 정보의 민주화가 이루어졌다는 내용이었다.


2019년 기준 세계 시가총액 톱10 기업 명단에는 무려 7개의 플랫폼 기업이 이름을 올렸다.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알리바바, 텐센트 순이다. 이들 7개 기업의 시가 총액은 무려 우리 돈 5천조 원, 국내 코스닥, 코스피를 합친 것의 두 배가 넘는다.


이 숫자들을 들여다보며 나는 또 생각한다. 내 아이가 살아갈 세상에서 필요한 조건들은 무엇일까. 동영상 촬영용 마이크를 사 줘야 할까, 학원을 한 곳 더 보내야 할까. 데이터로 사람의 마음을 읽는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인간됨이란 어떤 차원이어야 할까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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