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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 한정판 드롭, 한정판 플랫폼의 ‘늪’ 체험기

발행 2023년 01월 06일

박선희기자 , sunh@apparelnews.co.kr

(왼)켄달 제너가 착용한 노스페이스, (오)지난해 크롭스타일로 한정 출시된 노스페이스 눕시

 

직업상 늘 옷을 보며 살지만, 유행에 따라 옷을 사지 않는다. 굳이 구분하자면 맘에 드는 제품을 보게 되면, 그것을 깔별(?)로 사는 쪽에 가깝다. 그래서 나는 ‘자라’에서 옷을 사지 못한다.

 

내게 어울리는 스타일의 이해와 확고한 취향은 나이 들어 생긴 것 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이다. 헷갈리거나 고민할 필요도, 충동구매의 폐해도 없다.

 

그런데 최근 아주 흥미로운 경험을 했다. 사건의 발단은 무려 2년 전, 그놈의 ‘알고리즘’ 때문이다. 웹 검색을 하다 알고리즘의 안내(?)로 마주한 한 장의 사진. 후디를 올려 쓰고 선글라스를 착용한 유명 모델 켄달 제너가 ‘노스페이스’ 눕시 다운을 입고, 긴 다리로 활보하는 그 한 장의 사진이 나를 눕시의 늪으로 끌어들였다.

 

곧바로 국내 ‘노스페이스’ 사이트로 직행했지만, 켄달이 입은 브라운 컬러가 없었다. 짧은 기장의 빵빵한 필파워와 함께 나를 사로잡은 것은 바로 그 ‘컬러’였다. 그래서 이번엔 해외 직구도 폭풍 검색했지만 브라운 컬러는 찾을 수 없었다.

 

그로부터 2년이 흘러, 지난 12월의 어느 날. 나는 또 그 사악한(?) 알고리즘에 의해 ‘노스페이스’ 사이트에 우연히 발을 들였다. 그런데 이런! 브라운 컬러의 벨티트 눕시 다운이 사이트 맨 위에 걸려 있는 게 아닌가. ‘솔드 아웃’이라는 공지와 함께. 그런데 바로 다음날 오전 10시 30분에 한정 수량을 출시한단다.

 

다음날 알람까지 맞춰놓고 10시 30분을 기다렸다. 초조했다.(돌이켜보면 이때부터 이미 나는 알고리즘에 이어 한정판 드롭의 상술에 약간 미쳐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한순간 접속자가 몰리며 사이트가 다운됐고, 20분쯤 지났을까, 사이트는 복구됐지만, ‘솔드 아웃’.

 

이제 초조함은 분노로 바뀌었다. 본사 CS로 전화를 걸뻔 했다. 나는 이 사태의 원인을 안다. 만약 이성을 상실한 채 전화를 걸었다면 “재판매 업자를 단속하지 않으니, 선량한 소비자가 피해를 보는 게 아니냐” 항의했을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드롭 공지문에, ‘한 ID로 한 벌만 구매 가능’이라는 조건이 있었다. 본사는 나름 재판매 업자에 대한 대응을 고민했던 것이다.

 

확고한 취향을 가진 자의 문제는, 일단 한번 눈에 든 물건을 쉬이 포기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밤이 되어 포털에 ‘노스페이스 노벨티 눕시 다운’을 검색하자, 내가 놓친 바로 그 제품이 ‘크림’ 등 한정판 플랫폼에 줄줄이 걸려 있었다. 가격은 무려 3배까지 올랐다. 29만원짜리가 72만원이라니. 입다가 되판다면 모를까.

 

그러나 제품 바로 아래, 눕시를 켄달만큼이나 멋지게 착용한 사람들의 사진 게시물은 다름 아닌 ‘트리거’였다. 그리고 하루가 흘러 52만원까지 떨어진 가격이 급기야 ‘싸게’ 보이는 마법이 벌어졌다. 결제는 끝났다.

 

‘노스페이스’는 눕시 다운으로 올겨울 대히트를 쳤다. 재판매 가격이 치솟은 것은 노벨티 눕시인데, 그 효과가 다른 상품으로까지 확산됐다. 무엇보다 가장 큰 소득은 젊은 세대들에게 ‘노스페이스’가 다시 가장 뜨거운 브랜드로 각인되었다는 사실이다.

 

샤넬과 나이키가 재판매 업자를 단속하고 나설 만큼 재판매는 패션 브랜드에 ‘계륵’같은 존재다. 재판매가가 올라 생기는 이익은 온전히 업자들의 것이고, 그들의 사재기에 일반 소비자들은 구매 기회를 상실한다. 그래서 직접 리세일 플랫폼을 만드는 브랜드들이 그렇게 늘어나는 것이다.

 

하지만 재판매가 잘 된다는 것 자체는 엄청난 홍보 효과를 낳는다. 재판매업자들이 몰려든다는 것은 곧 높은 로열티를 뜻하므로.

 

내가 평생 처음으로 ‘눕시’ 한정판을 웃돈을 주고 사게 되기까지 과정을 되짚어보면, 요즘 마케팅의 매카니즘이 보인다. 그 안에는 이 시대 모든 마케팅 전술들이 있다. 셀러브리티 협찬, SNS로 소문내기, 한정판으로 구매욕 자극, 재판매 이슈로 로열티 상승에 이르는 매카니즘 속에서 나는 결제 버튼을 클릭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한정판 드롭이든, SNS 홍보든, 콜라보레이션이든 그 방법이 무엇이든 간에, 물은 끓는 점에 이르러서야 끓는다. 누구나의 행위가 원하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행위가 결과로 이어지려면, 소비자 충성도가 전제되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아마도 지금, 노스페이스의 흥행을 부러워하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박선희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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