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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窓 - ‘제조 절벽’이 불러올 가혹한 미래

발행 2019년 03월 29일

박해영기자 , envy007@apparelnews.co.kr

[어패럴뉴스 박해영 기자] 수년 전 디자이너 지원 사업과 관련한 간담회에 참석한 적이 있다.


현장에서 한 디자이너는 상기된 얼굴로 “봉제 공장에서 내 옷이 안 밀리고 재봉틀에 올라가 있는 지를 눈으로 확인하는데 신경이 다 빼앗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판매나 마케팅에 신경을 쓸 수 있겠는가”라며 “대한민국 디자이너에게는 창작 보다 생산이 0순위 업무다”라고 일갈했다.


당시 현장에서 느낀 열악한 제조 환경을 요즘 새삼 곱씹게 되는 것은 기자 역시 그 종말이 머지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중구, 금천구에는 봉제공장이 각각 1,000여곳, 중랑구에는 1,300여곳이 존재한다. 매년 숫자는 줄고 조만간 1,000곳 이하로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국은 2003년부터 무역적자로 돌아섰고, 2016년부터 지난해 9월까지 무역적자 누적액이 40억 달러를 초과했다. 중국, 베트남 등지로의 생산기지 이전 영향 탓이다.


국내 최대 운동화 산지인 부산의 분위기도 심상치 않다. 부산 기반 스포츠 업체인 화승의 법정 관리 신청 이후 신발 생산처들은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 과거 ‘스베누’ 사태에 이은 두 번 째 쇼크로 신발 제조 기반이 무너지고 있다. 국내 브랜드 업체 두 곳은 파산한 신발 공장을 대체할만한 곳을 찾다 포기하고 베트남 이전을 최근 결정했다.


성수동도 마찬가지다. 국내 최대 구두 제조 기지로 명성이 점차 퇴색되어 가고 있다. 이미 젠트리피케이션에 따른 여파로 제화 공장들이 문을 닫거나 쫓겨났고 잦은 노동 쟁의로 고용난까지 겹친 상황이다.


전국적으로 제조 기지가 크게 흔들리면서 생산 공장들의 ‘엑소더스’는 올해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패션 전 카테고리의 생산 기반이 동시에 흔들리는 건 사실상 처음이다.


이탈리아와 한국이 유사하다는 생각이 사뭇 들었다. 최근 발표된 바에 따르면 한국과 이탈리아의 노동생산성은 각각 100과 97로 비슷하다. 미국, 프랑스, 독일 등은 150을 웃돈다. ‘메이드 인 이탈리아’의 명성이 예전 보다 못한 데는 동유럽, 동남아시아, 중국 등지로 생산지가 이동하고, 이탈리아에서는 피니싱만 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이탈리아로서는 큰 손이었던 러시아 거래선이 무너지고 평생노동 계약 등 강도 높은 노동자 보호법의 실행, 인건비 상승 등이 겹치며 제조업이 통째로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최근 홍콩패션액세스에서 만난 한 피혁 전문 업체 사장은 해외 바이어들은 ‘메이드 인 코리아’이기 때문에 바잉을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산에 대한 신뢰도는 10년 전 50%에서 이젠 100%라고 한다. 또 매년 글로벌 수준을 뛰어 넘는 상품을 개발하고 가격 경쟁력까지 갖춘 한국산이 늘고 있다고 했다.


해외 생산은 지속가능성을 담보해 주지 않는다. 낙후된 국가들이 세금 감면, 저임금 노동력 지원, 생산라인 구축비용 등을 지원하며 해외 기업을 유치하지만 빌미를 찾아자리를 빼앗고 자국민에 넘겨주는 경우도 허다하다. 또 노동인력의 노령화, 감소 속도는 빠른 반면 이를 대체할 공장 인프라의 시스템화, 디지털화는 기초 수준도 안 된다.

전시회 부스 지원, 스타트업 육성에만 쏠려 있는 정부 정책도 문제다. 앞서 밝혔듯 1인 창업자들에게 필요한건 단순하다. 말 그대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퍼포먼스형 사업에 집중할 게 아니라, 산업 스트림 전체가 유기적이고 균형감 있는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 제조업은 패션 산업의 기초 체력이다. 기초 체력을 경시한 대가는 가혹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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