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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창 - 디자이너를 ‘몸매’ 순으로 뽑는 나라

발행 2017년 11월 20일

박선희기자 , sunh@apparelnews.co.kr

외국 생활을 오래하다 국내 패션 회사의 마케팅 부서로 컴백한 한 임원은 “장기자랑이라는 말은 한국에만 있는 이상한 말”이라고 했다. 간호사들에게 비키니를 입히고 춤을 추게 한 성심병원 사태를 두고 나온 얘기였다.


일을 하려고 모인 직장에서 송년회, 워크샵 등 행사 때마다 직원들에게 장기자랑을 시키고, 심지어 경연까지 벌이는 풍경이 그로써는 정말 피하고 싶은 일이었다고 했다.


매체 생활을 하다보면 업체의 행사를 방문할 일이 이따금 생긴다. 20대 중반에서 많게는 40대에 이르는 ‘어른’들이 팀을 짜서 공연을 하는 모습을 보며 손발이 오그라드는 어색함을 기자 역시 느껴본 적이 있다. 심지어 직원들에게 미안한 마음마저 들었다.


사람들 간의 정이나 끈끈함, 결속력을 강조하는 문화를 나쁘다고 할 순 없지만 개인의 취향이나 선택권의 희생을 강요해도 된다는 믿음은 시대착오적이다. 심리학자들은 단체생활의 유대감을 유난히 중시하는 이런 문화가 농경시대에나 통했던 과거의 산물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근저에는 실은 ‘까라면 까라’ 식의 권위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 더 나아가 여성을 ‘관람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구태의 시각까지도.


‘장기자랑’에 대한 이야기는 패션 업계의 또 다른 이슈로 이어졌다.


기자 초년병 시절 아동복 업계를 출입할 때였다. 당시 만난 업체 직원은 기자에게 아동복 브랜드 디자이너들은 모두 키가 작다고 했다. 이유는 키가 크고 몸이 예쁜 디자이너들은 모두 여성복 업체에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출입처가 여성복으로 바뀐 이후 그것이 그냥 ‘상식’처럼 통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디자인을 전공한 이상 모두가 이왕이면 여성복에서 일하기를 원하지만, 키가 작거나 날씬하지 않으면 꿈조차 꾸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러한 ‘상식’은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통하고 있다.


이유는 이렇다. 대학에서 디자인을 배웠다 하더라도 실무는 어차피 처음부터 가르쳐야 하니 ‘피팅’ 가능 여부 즉, 몸이 예쁜 지가 채용의 첫 번째 조건이라는 것이다. 한 마디로 신입 디자이너는 ‘피팅 모델’로 쓰여진다.


각 업체가 직원들에게 부여하는 역할에 대해 옳다 그르다 평가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하지만 본연의 업무에 대한 충성도나 디자이너로서의 자질, 감각보다 ‘몸’이 우선조건이 되고 그에 부합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겐 지원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못해 코믹하게 느껴진다.


이 역시 분명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국내 패션 업계만의 관행일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 같은 채용 관행이 상식인 곳에서 과연 디자이너의 ‘크리에이티브’가 존중받는 일이 가능한가 되묻지 않을 수 없고 가장 핵심 기능을 수행하는 이들을 존중하지 않는 기업이 성공할 수 있을까 역시 의문이다.


무엇보다 기업들의, 혹은 경영진들의 ‘직원관’은 지금 어느 쯤의 시대에 멈춰져 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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