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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록히드마틴 / 록히드마틴 어패럴 |
‘록히드마틴’의 어패럴 브랜드에 대한 논란이 국내가 아닌, 미국 현지 SNS에서 벌어졌다. 네티즌들은 ‘전쟁’이라는 이름과 다를 바 없는 세계 최대 무기 업체의 이름을 딴 패션이 아시아의 한 나라에서 런칭된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날을 세웠다.
어떤 이는 세계에서 최고로 비싼 전투기를 만들어, 천문학적 수익을 거둬 들이는 기업이 패션 사업까지 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따졌고, 어떤 이는 그 이름이 새겨진 패션을 만들겠다는 아시아의 기업이 그 이름이 상징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알고 있는지 물었다.
그들이 반전주의자든 평화주의자든 전쟁이라는 인류의 비극을 기회로 돈을 버는 방산업체를 비판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다. 나는 다만, 그 이름을 빌려 이제 막 사업을 시작한 한국의 업체가 걱정되었다.
네티즌들의 공방에서 나의 의식을 잡아끈 이야기는, 아시아 사람들은 뜻을 알지도 못하는 외국어가 새겨진 옷을 아무렇지도 않게 입느냐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외국어로 지어진 수많은 패션 브랜드의 이름들이 새삼스럽게 다시 보였다.
자동차, 다큐멘터리 채널, 잡지, 카메라의 이름을 단 패션은 대부분 한국에서 처음 만들어졌다. 외국어 이름에 너무도 익숙해진 나머지, 아무런 자의식이나 필터링 없이 받아들였던 이 이름들을 그 나라 언어를 쓰는 사람의 시선에서 생각해 보니, 여간 어색한 게 아니었다.
이들뿐만이 아니다. 우리말로 하면 산이나 바다가 되는 이태리 단어, 외국의 백화점 이름을 가져다 이름으로 쓴 브랜드들과 우리는 수십 년을 함께 해 왔다. 요즘에는 외국의 박물관 이름, 다리 이름을 들여다 패션 브랜드를 만드는 경지에 이르렀다. ‘서강대교’, ‘마포대교’, ‘덕수궁미술관’이라는 이름의 패션 브랜드를 중국의 어떤 기업들이 만들었다고 상상해보면 이것이 얼마나 어색한 일인지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국내 정상의 기업이 운영하는 브랜드조차 영어의 일반 명사로 된 이름 때문에 해외 사업에 장애를 겪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물론 이는 서양의 패션이 현대 패션의 본류이기 때문이라는 운명적 사실에 기인한다. 그들의 문화가 세계인의 삶에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이니, 우리나라의 다리 이름과 미술관 이름이 다른 나라의 패션 브랜드로 만들어질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패션이 아닌, 가전 같은 분야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 한국의 가전이 가장 값비싼 혼수로 대우받는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그 가전제품의 이름을 딴 패션 등 각종 라이선스 브랜드들이 유통되고 있다.
서양의 패션을 흉내 내고 따라가며, 해외 브랜드의 이름을 들여오거나, 수입을 해 가며 우리 패션 산업은 발전했다. 그리고 우리에게 외국어로 된 패션 브랜드의 이름은 그 뜻보다, 이미지와 인지도로 각인되어 있다.
최근 수년간의 특징 중 하나인 비패션 브랜드의 패션화는 라이선스 산업에 의해 주도됐다. 그 성공들에 대해 컨텐츠 개발의 귀재, 디렉팅 능력의 결과라고 스스로를 평가하며, 어패럴뉴스 역시 그러한 해석을 부여했다. 이름을 빌려준 해외 기업들은 돈을 벌어다 주는 한국 기업의 능력을 찬양했지만, 급기야 방산 기업 이름인 ‘록히드마틴’의 논쟁을 통해 그 나라 보통 사람들의 시선이 드러난 것이다.
생각해 보면, 미주와 유럽의 유명 패션 브랜드들에서 국내와 같은 외국어 이름은 찾아보기 힘들다. 브랜드를 만든 디자이너의 이름이거나, 상징들을 조합해 만들어졌거나 하는 식이다. BI는 ‘브랜드 아이덴티티’이니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우리는 아직 저들을 흉내 내는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몇 년 전 서울패션위크를 찾은 프랑스 유명 백화점의 한 바이어는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한국의 패션 기업들이 영어나 불어 이름을 쓰는 것이, 한국의 위상을 고려할 때 이제는 올드해 보인다. 한국어로 된 이름이 더 ‘힙’해 보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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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희 편집국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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