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준의 ‘스타트업’의 세계

사진=게티이미지

고급 요리의 대명사로 불리는 ‘푸아그라(foie gras)’는 거위 간을 재료로 하는 요리이다. 음식은 취향의 문제이기에 여기에서 다룰 것은 아니지만, 요리의 원재료인 거위의 커다란 간을 얻기 위해 사육 과정에서 거위를 학대한다는 논란이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유럽 및 미국에서는 법적 규제 시도까지 일어났다.

갑자기 ‘푸아그라’ 요리를 언급하는 이유는, 최근 벤처업계의 숙원으로 불리며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복수의결권’ 때문이다.

복수의결권의 도입 취지는 이렇다. 창업자가 천신만고 끝에 일군 스타트업을 큰 기업으로 만들었지만, 그 과정에서 필연적인 대규모 투자로 인해, 창업자 자신의 지분율은 극히 낮아지고(희석:dilution), 결국은 창업자가 아닌 투자자들만 수익을 챙기는 결과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을 만들어 벤처 투자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자는 것에서 출발했다.

우리나라 상법은 1개의 주식이 1개의 의결권만을 갖도록 되어 있지만, OECD 36개국 중 미국, 영국, 프랑스 등 17개국이 이미 복수의결권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2021년, 우리나라 스타트업으로는 처음으로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한 쿠팡이 뉴욕을 선택한 이유가 바로 이 복수의결권 때문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 필요성을 주장하는 목소리에 더 힘이 실렸다. 그 결과 수차례 시도 끝에 지난 4월 2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게 된 것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푸아그라 현상(Foie Gras Phenomenon)’이라는 단어가 있다. 미국 스타트업/벤처 전문 미디어인 크런치베이스(Crunchbase)의 산하조직인 씨비인사이트(CB insight)가 몇 차례 내놓은 보고서에서 제기한 개념인데, 투자자들이 스타트업에 대규모 투자금을 넣어서 그 스타트업의 시장점유율과 기업 가치를 끌어올리는(pumping) 현상을 이야기한다.

실제, 2022년 상반기까지 미국 및 글로벌 스타트업 시장이 활황의 정점을 지날 당시 이러한 ‘푸아그라 현상’은 많은 유니콘 스타트업들에서 목격됐다. 그 후의 결과는 어떨까?

씨비인사이트가 미국 유니콘들에 대한 통계치를 분석한 보고서에 따르면, 유니콘이 된 회사들 중 상대적으로 많은 펀딩을 받은 회사들의 상장(IPO) 후 주가수익률이 그렇지 않은 회사들(펀딩을 적게 받은 유니콘)에 비해서 부진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2022년 우리나라의 IPO 시장과도 매우 유사한 양상을 보인다. 다양한 이유가 더 있겠지만, 작년 우리나라 IPO 시장 부진의 가장 큰 원인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지나치게 비싸진 신규 상장기업의 기업가치다. 펀더멘털 요인과 성장과정에서 많은 투자금을 유치한 결과, 상장 전 투자자들(VC 등)의 매도세 증가라는 수급요인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하지만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IPO 이후 유통시장의 투자자들 보호에 관련한 것이다. 미국 통계치와 우리 주식시장의 작년 상황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상장 전(또는 유니콘이 되기 전) 대규모 투자를 받은 회사일수록 그 이후 주가수익률이 부진할 가능성이 높다.

투자라는 것은 꿀단지를 나눠 먹는 것과 같다. 내가 혼자 꿀을 다 먹기 위해서, 꿀단지를 바닥까지 긁어먹으려는 숟가락질로 단지를 깨지 말아야 한다. 남은 꿀도 있어야 내 뒤의 투자자들이 숟가락을 들고 달려들 것이고(매수할 것이고), 내 뒤의 투자자들이 있어야, 그들에게 내 주식을 팔고 내가 그 기업에서 돈을 회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