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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운 날씨에 햇빛을 피하며 걷는 서울 시민들 /사진=권도이 기자 kdiphoto@apparelnew.co.kr |
원료 수급·생산 불안정…소재 공급망 리스크 부상
"2040년 면화 재배 지역의 75%, 고온 위험 지역"
친환경 중심에서 '기후 변화 대응 기능성 소재'로
[어패럴뉴스 오경천 기자] 기후변화가 패션 소재 시장의 판을 바꾸고 있다.
그동안 패션업계의 기후변화 대응은 재생 폴리에스터, 천연소재 등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한 '지속 가능 소재' 개발에 집중됐다.
하지만 최근 폭염과 가뭄, 홍수 등 이상기후가 일상화되면서 패션업계의 움직임도 달라지고 있다. 원료 수급과 생산 안정성이 흔들리는 동시에 소비자가 입는 옷에도 이전과 다른 기능이 요구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기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는 소재'에서 한발 더 나아가 '기후변화에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원료 확보'와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기능성 소재 개발'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천연 섬유 시장은 기후변화에 직격탄을 맞았다.
인도, 미국, 중국, 브라질, 파키스탄, 튀르키예 등 세계 주요 면화 생산국들은 이상 고온, 가뭄, 집중호우 등 기후변화로 생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국 면화의 90% 이상을 생산하는 신장 지역은 올해 장기간 폭염과 가뭄으로 수확량 감소는 물론 품질 저하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수급 불안이 커지면서 면화 가격은 폭등하고 있다. 8월 말 면화 선물 가격은 파운드당 90센트를 초과해 최근 2년 최고치를 기록했다. 연구 전문 기관들은 2040년 전 세계 면화 재배 지역의 75%가 40℃ 이상의 고온 위험 지역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기후 재앙 직격탄 맞은 천연 소재
면화뿐만이 아니다. 양모(울)의 대표 생산 지역인 호주는 극심한 가뭄으로 2025/26 시즌 생산량이 10% 가량 감소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처럼 패션산업에서 기후변화는 이제 ESG 측면만의 문제가 아니다. 원료 가격과 품질, 공급 안정성을 좌우하는 '소재 공급망 리스크'로 부상하고 있다.
글로벌 패션기업들도 대응에 나섰다.
프랑스 럭셔리 패션그룹 케어링(Kering)과 스페인의 인디텍스(Inditex)는 면화, 양모, 가죽, 캐시미어 등 주요 천연 원료의 안정적인 수급을 위한 재생농업 프로젝트를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다.
LVMH 역시 면화와 양모, 가죽 공급망에 재생농업 방식을 도입했다.
단순히 친환경 원료의 확보를 넘어, 기후변화에도 안정적으로 원료를 생산할 수 있는 인프라 구축에 직접 뛰어든 것이다.
또 하나 주목되는 움직임은 '기후 적응형 소재'의 부상이다.
세계적으로 폭염이 잦아지고 여름이 길어지면서 소비자가 변화한 기후를 견딜 수 있도록 돕는 기능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나이키'는 지난해 새로운 냉각 기술 '에어로핏(Aero-FIT)'을 공개하면서 '더 뜨거워진 세상을 위한 냉각 기술'이라고 소개했다. 기존 퍼포먼스 의류보다 2배 많은 공기가 통하도록 설계해 땀 증발과 열 배출을 높인 기술이다.
냉감은 기본, 복합 기능성 고도화
나이키는 '에어로핏' 소재로 섬유 폐기물을 활용했다. 탄소배출을 줄이는 ‘기후변화 완화’와 더워진 환경에 대응하는 ‘기후변화 적응’을 동시에 실행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자체 소재 개발에 적극적인 '컬럼비아'는 옴니프리즈-옴니프리즈 제로-옴니프리즈 제로 아이스(Omni-Freeze Zero Ice)로 냉감 소재 고도화에 주력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복합 기능성 소재 개발, 메쉬 및 타공 기술의 고도화 등 적극적인 변화의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단순 냉감을 넘어 흡한·속건과 항균·소취, 통기성 등을 결합한 복합 기능이 중요해지면서 몸에 달라붙는 면적을 줄이고, 통기성을 높이는 시어서커와 트리코트 메쉬 등의 활용도 확대되고 있다.
쾌적성을 높이기 위한 타공(Punching)은 과거에는 미세한 구멍을 내는 수준이었으나, 현재는 통기성 극대화를 위해 타공의 크기를 키우면서도 내구성을 유지하는 기술이 발전하고 있다. 브랜드 고유의 패턴과 디자인을 타공에 적용해 기능성과 차별화를 동시에 노리는 사례도 늘고 있다.
기후 변화의 대응력에 미래 성패가 좌우되는 소재 업체들은 더 적극적으로 투자를 늘리고 있다.
효성티앤씨, 태광산업, 휴비스, 도레이첨단소재 등 주요 화섬 기업들은 기존 친환경 중심에서 냉감 및 여름 기능성 소재로 방향을 틀었다. 최근에는 단순한 냉감 성능을 넘어 흡한·속건과 항균·소취 등을 결합하거나 바이오 기반 원료를 적용하는 등 기능과 지속가능성을 동시에 확보하는 방향으로 기술 개발이 진화하고 있다.
기능성 소재 전문기업 벤텍스는 자체 개발한 '매직쉴드'와 '수퍼드라이존'을 활용한 레이어링 시스템을 통해 투습·방수와 흡한·속건 기능을 동시에 구현하며 국내뿐 아니라 유럽과 일본 등 해외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고경찬 벤텍스 대표는 "기후변화 시대에 패션 소재의 기준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앞으로는 ESG를 겨냥한 친환경 솔루션은 기본이 되고,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고도화된 기능성 개발이 경쟁의 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추운 봄과 더운 가을'…기후변화가 바꾸는 기획의 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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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어진 더위에 대응하는 'H&M'의 가벼운 소재 가을 블라우스 /사진=H&M |
상품 출시 시점과 실제 수요 간극 커져
S/S, F/W에서 '봄·겨울', '가을·여름'으로
기후변화는 패션업계의 시즌 구분뿐 아니라 상품 출시 시점과 생산 방식, 소재 선택까지 바꾸고 있다. '몇 월에 무엇을 팔 것인가'가 아닌, '어떤 기온에 무엇을 팔 것인가'를 기준으로 기획하는 시대가 됐다.
특히 국내의 경우 봄과 가을의 역할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 지소영 챌린저코리아 대표는 "과거의 봄은 따뜻하고 가을은 선선한 계절이었다면 최근에는 추운 봄과 더운 가을이라는 이상기후가 나타나고 있다"며 "이에 따라 봄은 겨울의 연장선, 가을은 여름의 연장선으로 인식하고 기획하는 경향이 강해졌다"고 말했다.
상품과 소재 구성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 가을 시즌이면 스웨터 등 두께감 있는 상품을 전면에 내세웠지만, 최근에는 9월까지 더위가 이어지면서 얇고 가벼운 소재의 비중을 늘리고 있다. 가을 신상품으로 반팔 제품을 내놓는 등 여름과 가을의 경계를 허문 기획도 확대되는 추세다.
해외에서도 마찬가지다. 'H&M'은 올여름 유럽의 폭염과 길어진 여름에 대응해 가을 컬렉션에 가벼운 소재를 확대하고 있다. 특히 여름 날씨가 9월까지 이어지면서 기존 가을 상품 출시 시점과 실제 소비 수요 간극이 커졌다는 판단이다.
'망고' 역시 기후변화로 전통적인 계절 구분의 의미가 약해지면서 고정된 시즌보다 실제 기온에 맞춰 상품을 공급하는 것에 주력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기존 '봄·여름(S/S), 가을·겨울(F/W)'이라는 묶음 자체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봄은 겨울과, 가을은 여름과 연결해 상품과 소재의 설계를 다시 짜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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