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기획] 한국 제조 찾는 글로벌 패션, '메이드 인 코리아'가 다시 뜬다

발행 2026년 09월 21일

박해영기자 , envy007@apparelnews.co.kr

 

'온' 부산 라이트스프레이 로봇 생산 시설

 

공급망부터 리테일까지...한국은 아시아의 '허브'

러닝화 '온', 김해에 로봇 공장...부산에 R&D센터

 

[어패럴뉴스 박해영 기자] 장기간 지속된 패션 산업의 공급망 불안이 '얼마나 싸게 만드느냐'에서 '얼마나 안정적이고 빠르게 공급할 수 있느냐'로 소싱의 기준을 바꿔 놓고 있다.

 

중국, 베트남 등 저비용 생산국에 밀렸던 한국 제조가 다시 주목받는 이유다.

 

이런 흐름은 과거 '국내 생산 회귀'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측면이 존재한다. K패션의 인기로 한국산 소재와 원부자재에 대한 관심이 덩달아 높아지면서 국내 제조 업체를 찾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러닝화의 대표주자로 떠오른 스위스 스포츠 '온(On)'이 있다. 이 회사는 해외 하드웨어 전진기지로 한국을 선택, 올해 김해시에 라이트스프레이(LightSpray) 로봇 생산 시설을, 부산에 R&D 센터를 구축했다.

 

이같은 선택의 배경에는 국내 기업들의 기술력이 있다. 라이트스프레이는 액체를 분사해 신발 갑피를 완성하는 원료로, 세계적으로도 희소한 기술이다. 이를 부산 성신신소재, 컴테크케미칼 등이 공급하고 있다.

 

'온'은 이에 그치지 않고, 연내 부산에서 자체 머티리얼쇼를 열고 소재·부품 업체 발굴에 나선다고 밝혔다.

 

나이키, 아디다스, 데상트 등 글로벌 스포츠 기업들의 부산행도 같은 이유다. 데상트는 부산에 신발 R&D센터인 'DISC'를 구축한데 이어 올해 데이터 검증과 테스트 인프라를 신설했다.

 

싸게 만들기보다, 안정적이고 빠른 소싱 '매력'

부산 굿트러스트, 연 수출액 수천억 규모 성장

 

부산과 경남에는 갑피와 중창, 아웃솔, 접착제, 화학 소재 등 신발 제조에 필요한 전문 업체들이 촘촘하게 모여 있다. 아이디어를 제품으로 빠르게 구현할 수 있는 '신발 제조 클러스터'가 여전히 살아 있다.

 

의류 제조에서도 변화가 감지된다.

 

미국과 유럽 패션 브랜드들이 다시 한국 공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지난해부터 아이디모드, 비에파 등 프리미엄 여성복 제조 업체를 중심으로 해외 문의가 급증하고 있다.

 

비에파의 유순민 대표는 "사실상 전무했던 해외 브랜드 제조 의뢰가 지난해부터 들어오기 시작했다. 최근 한국산 제조 프리미엄과 다품종 기획, 안정적인 생산 능력에 대한 인식이 크게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 리포메이션 등 미국 프리미엄 패션 브랜드들이 직접 문의를 해와 협의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의류 ODM으로는 드문 수출 강소기업도 등장하고 있다. 부산에 본사를 두고 있는 굿트러스트는 미국 등 해외 패션 기업 40여 곳과 거래하며 연간 수천억 원 규모로 성장했다. 부산 기반의 우양통상도 랄프로렌, 캘빈 클라인 등 글로벌 거래선이 빠르게 늘었다.

 

원부자재 조달부터 완제품 생산까지 '완결'

중국 의존 줄이는 '차이나 플러스원' 기회

 

기능성 화섬 소재, 특수 원부자재를 한국에서 조달하던 기업들이 봉제와 완제품 생산까지 국내에서 해결하려는 움직임도 늘고 있다. 원단을 해외 공장으로 다시 내보내는 시간과 물류비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비용만 놓고 보면 한국은 중국보다 30~40% 비싸다. 하지만 관세와 물류비, 개발 기간, 불량률 등을 고려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싸게 만들기보다 빠르게, 제대로 만들기를 원한다면 한국은 매력적인 소싱처다.

 

첨단기술도 우위적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로봇과 AI 기술을 통해 높은 인건비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온’의 라이트스프레이가 대표적 사례로, 로봇이 스프레이를 분사해 신발을 완성, 노동력을 파격적으로 줄였다.

 

향후 한국 제조에 대한 글로벌 패션의 관심은 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미국 패션 기업들이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있고, 베트남, 방글라데시, 미얀마 등은 인건비 상승과 정세 불안, 기후 재앙 등 불안 요소가 커지고 있다.

 

한국은 그 모든 불안 요소에서 비껴나 있으면서 첨단기술과 제조 인프라를 가진 거의 유일한 나라다.

 

올해 미국 기업의 상당수는 중국 소싱 비중을 10% 미만으로 낮췄다. 중국을 완전히 떠나기보다 생산처를 여러 국가로 나누는 '차이나 플러스 원(China+1)' 전략이 확산되면서 한국 제조에 새로운 시장이 열릴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문제는 사라지는 공장들과 인력의 고령화다.

 

업계 한 관계자는 "'메이드 인 코리아'의 기회가 커진 만큼, 제조 산업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 수출이 증가하고 있는 국내 패션 산업을 위해서도 제조 인프라의 재건은 필수다. 제조가 무너지면 패션 산업의 생태계가 무너진다"고 말했다.

 


 

극한 기후의 시대, 주목받는 한국산 고기능 소재

 

'프리뷰 인 서울(PIS) 2026' 참관객들이 부스를 방문한 모습 /사진=권도이 기자 kdiphoto@apparelnew.co.kr

 

글로벌 스포츠·아웃도어, '한국산' 선호 높아져

오더부터 공급까지 40~80, 빠른 속도 강점

 

스톤아일랜드, 알로, 온, 아크테릭스 등 글로벌 브랜드들이 한국산 소재 비중을 늘리고 있다. 화섬을 주로 쓰는 스포츠·아웃도어는 물론 프리미엄 패션으로 저변이 넓어지고 있다.

 

'프리뷰 인 서울(PIS) 2026'에는 랄프로렌, 룰루레몬, 라코스테 등 글로벌 브랜드와 벤더를 포함 해외 바이어 약 200명이 방문했다. 지난 6월 열린 '서울 프리미엄 텍스타일(SPT) 2026'에도 휴고보스, 랄프로렌, 마이클코어스 등 글로벌 패션 브랜드 50여 개사가 참관했다.

 

지금의 경쟁력은 치열한 생존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중국의 저가 소재와 일본의 하이엔드 소재 사이에서 국내 업체들은 일찌감치 고기능성 시장으로 방향을 틀었다.

 

폭염과 한파 등 극한 기후 변화로 최근 시즈널 고기능성 소재 수요가 커지면서 한국산 기능성 소재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있다. 냉감과 발열, 초경량, 스트레치, 항균 등 기능성 원단은 물론 염색·후가공 분야에서의 경쟁력도 독보적이다.

 

트렌드 주기가 짧아지고 반응 생산 비중이 커지는 최근의 환경에서 '속도'도 강점이다. 예스텍스타일컨설팅 관계자는 "일본산 소재는 오더부터 공급까지 통상 90~180일이 걸리지만, 한국은 40~80일이 걸린다. 최대 100일 가량 납기를 단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원사에서 원단, 염색·가공, 봉제에 이르는 밸류 체인이 한 나라 안에 구축되어 있어 소량·다품종 생산이 가능하고, 고기능성 기술까지 갖춘 경우는 흔치 않다.

 

실제 콜스, 랄프로렌, 바버, 룰루레몬 등 대구 지역 소재 업체와 거래하고 있는 해외 기업들이 부산·경남 일대의 제조 인프라 활용에도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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