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창식의 '다른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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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탐라공화국 주요 명소 호롱궁 /사진=탐라공화국 홈페이지 |
몇 해 전 제주에서 강우현 대표를 만난 적이 있다. 황폐했던 춘천 남이섬을 오늘의 남이섬으로 만들어낸 사람이다.
그가 제주 한림의 땅을 사서 개간한다고 했을 때 반응은 둘로 갈렸다. 그래도 강우현이니 뭔가 해낼 것이라는 기대와, 제주 땅을 너무 쉽게 본 것 아니냐는 우려였다. 그 땅을 직접 본 사람이라면 대개 후자였다. 나무도 물도 없이 돌과 가시넝쿨만 가득한 3만 평 황무지였기 때문이다.
그 땅에 서면 누구나 가장 먼저 돌을 본다. 치워야 할 돌, 돈이 드는 돌, 공사를 가로막는 돌이다. 그런데 그는 같은 돌을 다르게 봤다. 돌이 많다는 것은 파낼 것이 많다는 뜻이었다. 그는 돌밭을 파서 웅덩이를 만들고, 파낸 돌과 흙으로 산을 쌓았다. 비가 많이 내리는 제주 날씨도 골칫거리가 아니라 자원으로 봤다. 빗물을 모아 물 걱정을 덜었고, 버려진 목재로는 정자를 세웠다. 새로 사들인 것은 하나도 없었다. 원래 그 자리에 있던 것을 다시 봤을 뿐이다. 그렇게 사람들이 즐겨 찾는 제2의 남이섬, 탐나라공화국이 태어났다.
2012년 런던올림픽은 막대한 예산 부담에 시달렸다. 성화대라면 으레 경기장 한편에 세워지는 거대한 구조물을 떠올린다. 몇 주 동안 불을 밝힌 뒤 철거될 구조물에 많은 비용과 자재를 쏟는 것도 오랫동안 당연하게 여겨졌다.
영국의 디자이너 토마스 헤더윅은 그 당연함을 따르지 않았다. 그는 무엇을 더 지을지 고민하는 대신, 이미 경기장 안으로 걸어 들어오고 있는 것을 봤다. 바로 선수단이었다. 그는 참가국을 상징하는 204개의 구리 꽃잎을 만들어 각국 선수단이 하나씩 들고 입장하게 했다. 흩어져 있던 꽃잎들은 경기장 중앙에 모여 하나의 거대한 불꽃이 되었다. 대회가 끝나자 성화대는 다시 204개로 분리되어 각 나라로 돌아갔고, 한때 하나의 불꽃을 이루었던 꽃잎은 각국에 특별한 유산으로 남았다. 그가 만든 것은 성화대가 아니었다. 아무도 무대 장치라 여기지 않았던 선수단의 행렬을, 올림픽의 주인공 자리로 되돌려 놓은 것이다.
브랜드 자문을 다니다 보면 정반대의 장면을 자주 만난다. 회의는 대부분 "우리는 이것이 없어서"로 시작한다. 예산이 없어서, 인지도가 없어서, 유명 모델을 쓰지 못해서, 매장이 좋은 자리에 없어서. 없는 것의 목록은 늘 길고 정확하다. 그 목록을 만드는 데는 아무런 상상력도 필요하지 않다.
그런데 "우리가 이미 가진 것은 무엇입니까?"라고 물으면 잠시 조용해진다. 30년 넘게 같은 공장에서 옷을 만들어온 시간, 오랫동안 축적된 봉제 기술과 패턴, 브랜드를 처음 시작했던 창업자의 이야기, 직원 이름을 기억하는 오래된 단골 고객. 이런 것들은 대개 자산 목록에 없다. 너무 익숙해서 특별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에서 지겨운 것이 밖에서는 아무도 갖지 못한 것일 때가 많다. 경쟁사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은 대개 우리도 살 수 있다. 30년이라는 시간은 누구도 살 수 없다.
지금은 없는 것을 만들어내기가 어느 때보다 쉬운 시대다. 없던 이미지도, 없던 카피도, 없던 모델도 몇 초면 나온다. 그래서 부족한 것을 채우는 일만으로는 더 이상 차이가 생기지 않는다. 모두가 같은 속도로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생성이 흔해질수록 귀해지는 것은 도구가 아니라 관점이다. 지금 당신의 브랜드에서 너무 당연해서 아무도 입 밖에 내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
강우현 대표에게 돌밭이 연못의 재료였듯, 헤더윅에게 선수단의 행렬이 성화대였듯, 브랜드의 가장 강한 무기도 이미 그 안에 있을지 모른다.
우리는 늘 지평선을 바라보지만, 답은 대개 발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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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창식 대구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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