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근] 패션기업의 AX…서로 다른 고민, 본질은 하나

발행 2026년 10월 12일

어패럴뉴스 , appnews@apparelnews.co.kr

최석근의 '디지로그 2.0'

 

AI 생성 이미지

 

최근 패션기업 대상의 AX 진단과 컨설팅을 준비하며 여러 기업과 한자리에 마주 앉았다. 시작 전에는 어느 정도 비슷한 고민들이 나오리라 생각했다.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한 기업은 1인 회사였다. 대표가 기획부터 디자인, 생산, 영업까지 거의 모든 일을 직접 한다. 이미 챗GPT와 클로드를 하루 종일 쓰고 새로운 도구가 나오면 바로 시험한다. 그의 고민은 'AI를 더 잘 쓰는 법'이 아니었다. 반복되는 자신의 패션 지식과 업무를 어떻게 자동화하고 시스템으로 만들 것인가였다. 세 명이 일하는 디자인 스튜디오는 달랐다. 여러 브랜드의 디자인 기획을 동시에 맡다 보니 프로젝트가 늘어날수록 인력이 함께 늘어나는 구조가 고민이었다. 트렌드 분석, 무드 보드, 컬러/소재 매칭, 디자인, 샘플링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AI가 어디까지 사람의 일을 나눠 가질 수 있을까. 이미지 한 장을 잘 만드는 생성형AI보다 '기획에서 실제 제품까지' 이어지는 워크플로우가 필요했다.

 

패션 IT 솔루션을 개발하는 기업의 질문은 정반대였다. 기술은 있는데 이것이 정말 현업의 일을 줄여주는지 확신하기 어려웠다. 패션 실무 경험을 기반으로 자동화 솔루션을 만들고 있지만, 브랜드가 실제로 겪는 문제점(Pain Point)과 맞닿아 있는지, 어떤 방향으로 개발해야 하는지가 고민이었다.

 

교육기관은 또 달랐다. 학생 선발부터 교육, 취업, 홍보까지 매년 반복되는 1년의 업무 루틴이 있다. AI를 거의 쓰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검색하고 물어보는 수준을 넘어, 이 익숙한 루틴 자체를 더 빠르고 정확하게 바꾸고 싶다고 했다. 표현이 인상적이었다. "우리가 지금의 루틴에 젖어 있는 것 같다." AI를 배우고 싶은 것이 아니라 AI를 계기로 자신들의 일하는 방식을 다시 보고 싶은 것이었다.

 

100명 안팎의 인력이 있는 오프라인 편집숍은 이미지 생성, 매출 분석, 홍보자료 작성 정도로 AI를 활용하고 있었다. 이제 온라인 사업을 확장하면서 어떤 AI를 어느 업무에 써야 하는지, 여러 도구를 어떻게 연결해야 디자인 생성에서 마케팅까지 이어질 수 있는지를 고민했다. 한편 남성 패션 컨설팅 서비스를 운영하는 기업은 이미 내부 CRM까지 개발했지만, 정작 현장의 스타일리스트가 이를 사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개발자와 현업 사이의 간극이 문제였다.

 

한 공간에 모였지만 정말 하나도 같지 않았다. 1인 기업과 100명 조직, 디자인 스튜디오와 교육기관, 패션 IT 기업과 유통기업. AI 활용 수준도, 조직의 디지털 역량도, 해결하고 싶은 문제도 모두 달랐다.

 

그런데 이야기를 계속 듣다 보니 다양한 문제들이 묘하게 같은 곳으로 수렴하기 시작했다. 결국 모두가 묻고 있던 것은 "어떤 AI를 써야 합니까?"가 아니었다.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어떻게 더 잘할 것인가', '사람과 AI의 역할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 '반복되는 일을 어떻게 줄이고 더 가치 있는 일에 집중할 것인가', 그리고 궁극적으로 '우리의 일하는 방식을 어떻게 다시 설계할 것인가'였다. 여기에서 AX의 본질이 보인다.

 

좋은 AI를 쓰면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이 아니다. 좋은 AI × 업무 이해도× 조직의 맥락(Context) × 업무 구조가 함께 작동할 때 성과가 만들어진다. AI 모델의 성능은 이제 경쟁사도 얼마든지 살 수 있다. 그러나 우리 회사가 무엇을 하는지, 고객이 누구인지, 지난주 어떤 의사결정을 했는지, 어떤 업무 규칙과 암묵지가 있는지는 AI가 저절로 알지 못한다.

 

그래서 AI는 '아주 똑똑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사원'과 비슷하다. AI 도입의 핵심은 이 신입사원을 더 똑똑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조직에 제대로 온보딩하는 것이다. 회사와 고객, 업무의 목적, 문서, 규칙, 과거의 판단과 경험을 이해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사람과 AI가 함께 일하면서 생긴 새로운 지식과 맥락이 다시 조직의 자산으로 축적되어야 한다.

 

이 관점에서 AX는 AI 에이전트를 많이 만드는 일이 아니다. 인간과 AI가 함께 일하며 조직의 맥락과 지식이 축적되는 업무 시스템을 만드는 일이다. 핵심은 두 가지다. 첫째는 '활용 체계(Harness)'다. 회사와 프로젝트의 맥락을 문서화하고, 반복 업무를 구조화하며, AI가 필요한 지식에 접근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드는 것이다. 둘째는 '관리 체계(Governance)'다. 누가 지식과 스킬을 관리할지, 무엇을 남기고 수정하고 폐기할지, 축적된 맥락을 어떻게 조직의 자산으로 유지할지 정해야 한다.

 

개인은 AI의 '활용'에 매료되기 쉽다. 그러나 기업과 조직은 '관리'까지 가야 한다. 활용과 관리 사이의 줄다리기를 설계하는 것, 바로 그 지점에서 개인의 AI 활용이 조직의 AX로 넘어간다. 그래서 앞으로 진행할 패션기업 AX 컨설팅에서도 "무슨 AI를 쓰고 계십니까?"보다 먼저 묻게 될 질문이 있다. "지금 어떤 방식으로 일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그다음 질문은 "그 방식은 왜 그렇게 되어 있습니까?"이다. 도구보다 업무를 보고, 자동화보다 맥락을 보고, 기술보다 사람과 조직을 먼저 봐야 한다. 서로 너무 달랐던 기업들의 이야기가 오히려 AX의 출발점은 하나라는 사실을 선명하게 보여주었다.

 

다음 글에서는 회의실 밖으로 나가보려 한다. 실제 기업의 업무 현장에서 어떤 문제가 발견되는지, 겉으로 드러난 AI 니즈와 진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각기 다른 패션기업의 맥락(Context)과 업무 흐름(Workflow)을 어떻게 진단하고 AI와 연결할 것인지. 실제 컨설팅 현장의 사례를 통해 패션 AX를 한 단계 더 깊이 들여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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