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노스페이스 / 뉴발란스×케일

신년호를 제작하며 불현듯 ‘시대 인식’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이유를 되짚어보니, 한해를 정리하고, 새해를 시작하는 기획을 펴내면서 지난 2~3년의 변화가 새삼 엄청난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지구는 하루에 한 번의 자전을, 1년에 한 바퀴의 공전을 하지만, 우리의 몸은 그것을 느끼지 못한다. 지구의 자전과 공전처럼, 세상의 변화들은 대부분 지금 당장 내 하루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않는다. 그러다 문득 계절이 바뀌고, 해가 바뀌면 깨닫게 되는 것이다.

사업의 세계에서 ‘시대 인식’은 계절감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시대의 감수성을 읽는 능력은 사업의 성패와 어떤 식으로든 연결된다. 기업의 윗자리일수록 그래서 언제나 깨어있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모든 분야가 그렇겠지만, 패션은 특히나 시시각각의 ‘시대 인식’을 제대로 해야만 성공할 수 있는 업종이다.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어도 시대가 그것을 이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거나, 더 이상 시대가 원치 않는 능력이라면 성공은 멀어지고, 심지어 낡은 이미지만을 남기게 된다.

이를테면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가 장애인과 성 소수자를 모델로 세우며 인간의 존엄을 이야기할 때, ‘몸’에 점수를 매겨 선발한 미인대회 출신들을 행사장에 도열시킨 사진을 홍보용이라고 배포해서는 곤란하다.

사람의 몸은 평가의 대상이 될 수 없고, 생김새를 떠나 그 자체로 존중받아 마땅하다는, 소위 ‘자기 몸 긍정주의’라는 가치관을 역주행하는 셈이니 말이다.

경쟁 브랜드들이 시대와의 공감을 넘어, 오피니언 리더로 시대를 이끌 때, 수십 년 전 폐기된 콘텐츠를 꺼내 드는 시대착오는 그 내부의 상황을 지레 짐작케 하고도 남음이 있다.

브랜딩은 타인의 머릿속에 인식을 심는 일이라고 했다. 잘 브랜딩된 브랜드는 마치 사람처럼, 고유의 태도를 갖는다. 세련되지 못한 생각이 세련된 애티튜드를 만들리 없고, 세련되지 못한 패션이 사람들을 유혹할 수는 더더욱 없다.

시대적 감수성을 읽지 못하는 브랜드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얻을 수는 없지 않은가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2024년은 격변의 시간이 될 가능성이 높다. 전 세계 공통의 패션 경기의 추락 같은 전망 때문이 아니다. 패션 산업 전반에서 일어나고 있는 ‘주류의 교체’가 새해에는 더 격렬하게 펼쳐질 것이기 때문이다.

오해하지 마시라. 오래됐음이 낡음을 뜻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패션은 오랜 전통을 늘 새롭게 함으로써 거듭 강력해진 부가가치를 만들어 온 산업이다.

늘 새롭게 하기의 대전제는 바로 다름 아닌 ‘시대 인식’이다. 눕시 시리즈로 MZ의 워너비가 된 ‘노스페이스’는 올해로 27년 차 브랜드다. ‘뉴발란스’를 1조원 대 반열에 올려놓은 동력의 시작은 클래식 운동화의 ‘콜라보레이션’이었다. 친환경 아웃도어의 세련된 이미지로 다시 전성기에 들어선 ‘코오롱스포츠’는 한때 낡은 이미지를 숨기기 위해 소나무 로고의 삭제를 고민했었다.

내부로부터의 치열한 시대 인식과 도전이 없었다면, 이들에게도 역시 수십 년의 낡은 역사만이 남겨졌을 것이다.

그러니, 새롭게 하기는 누구나 가능하다. 백화점의 메인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한 신예들을 바라보며 낙담할 것이 아니라, 지금 시대의 방식으로 새롭게 하기를 고민해 보자.

박선희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