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경의 ‘패션 법(法) 이야기’

사진=게티이미지

패션은 멋을 다루는 산업이다. 멋, 스타일이 전면에 나서는 만큼 안전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둔감하기 쉽다. 기능성까지 겸비한 제품조차 안전 이슈에는 익숙치 않다. 하지만, 갈수록 더 험해지는 요즘 세상에 패션도 안전 없이는 결코 온전할 수 없다.

캘리포니아 비영리단체 환경보건센터(CEH)는 2022년 말부터 6개월간 스포츠 의류에 포함된 비스페놀A(BPA)를 분석한 후, 과다한 유독물질을 이유로 나이키 등 8개 글로벌 브랜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유독성 화학물질 BPA가 기준치 이상으로 검출된 스포츠 브랜드들은 업계 1위 나이키를 포함하여 애슬레타, 챔피온, 콜스, 필라, 아디다스, 노스페이스, 파타고니아 등 8개 업체이며, 스포츠브라, 운동복 셔츠, 레깅스, 반바지 등이 주요 대상이었다.

특히, 스판덱스가 함유된 폴리에스터 의류에서 BPA가 많이 검출되었다. 심지어, 아식스와 휠라, 뉴발란스 등의 경우, 캘리포니아주의 하루 피부 노출 허용량 3㎍보다 최대 40배까지 검출된 제품도 밝혀져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미국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여성들이 레깅스, 스포츠브라를 착용하는 실상을 감안할 때 이는 단순히 의류 관계자나 스포츠 종사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특히, 레깅스는 요즘 젊은 여성들의 일상복으로도 많이 즐겨 애용되기 때문에 유독물질의 위험성은 우리 생활 깊숙이 스며든 것이다.

원래 BPA는 인류에게 필요한 화학물질이다. 즉, 의복을 포함한 플라스틱을 신축하기 위하여 직물을 부드럽고 유연하게 만드는 유용성이 있으며, 스킨로션, 치과용 실란트의 구성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BPA는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과 유사한 환경호르몬으로서 신체 내 호르몬 체계를 어지럽히며,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눈, 기관지에 악영향을 미치고, 심지어 비만, 심혈관질환, 당뇨병, 암, 발기부전까지 이어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특히, 여성에게 생식 기능에 직격탄을 날릴 수 있으며, 태아, 유아에게는 소아비만이나 행동장애까지 유발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에, 오래전부터 미국에서는 BPA의 부작용을 감안하여 의류뿐 아니라 식품 포장 등 생활용품에도 사용하지 말라는 목소리가 강하다. CEH의 조사 결과에 의하면, BPA가 검출된 의류제품에서 BPA가 화학적으로 원단과 결합되어 있지만, 화학적 결합력이 강하지 않기 때문에 쉽게 벗겨질 수 있기 때문에 피부 등에 직접 노출될 수 있다고 한다.

이에 애슬래타 등 해당 기업들은 법률의 안전기준에 적합하도록 모든 제품을 제조, 판매했다고 항변하였고, 미국화학평의회(ACC)는 올해 2월 BPA가 소비자에게 노출되는 정도는 매우 낮아서 안전하다는 조사 결과도 내놓았지만, 소비자들의 반응은 영 꺼림칙하다.

더구나, 1등 기업 나이키는 최근 미주리 주에서 지속가능성 친환경 제품이 그린워싱이라는 취지의 소송까지 겪고 있기 때문에 패션업계 전체를 바라보는 대중의 시각은 삐딱할 수 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국가기술표준원의 KC인증제도를 비롯하여 각종 리콜명령제도를 통하여 섬유제품 위주로 유해물질을 관리한다.

국제기준으로서 STANDARD 100, OEKO-TEX 국제 공동체의 각종 인증시스템도 적용되고 있다. 하지만, 선진국 수준으로 가는 길은 아직 멀었다.

끊이지 않는 안전사고 때문에 대한민국은 사고 공화국의 오명을 뒤집어썼다. 패션계에도 만연한 안전불감증을 극복하고, 안전한 패션 소비생활을 보장하는 환경이 필요하다. 패션산업의 안전 앞에서는 모두가 운명공동체라는 점을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