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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광] AI가 일을 덜어줄수록, 태도의 가치는 더 커진다

발행 2026년 10월 25일

어패럴뉴스 , appnews@apparelnews.co.kr

이재광의 '인생이 패션' 

AI 생성 이미지

 

요즘 누구나 그렇듯 필자 역시 AI를 자주 사용하고 있다. 처음에는 단순히 궁금한 내용을 채팅창에 물어보는 정도였다. 모르는 개념을 확인하거나, 영어 표현을 다듬거나, 자료를 요약하는 수준이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활용 범위가 조금씩 넓어졌다. 시간이 오래 걸리던 인보이스 정리와 대조 작업을 맡기기 시작했고, 이후에는 법률과 회계적인 검토, 계약서 초안 작성, 내부 의사결정 자료 정리까지 도움을 받게 되었다.


최근에는 한 투자자분을 만나 전환사채 관련 논의를 진행한 적이 있다. 그 과정에서 준비한 계약서와 절차를 보시더니, "이 계약서는 누가 작성했느냐"고 물으셨다. 내용이 잘 정리돼 있고, 준비 과정도 매끄러웠다는 취지였다. 물론 최종적인 판단과 책임은 사람이 져야 하지만, 그 초안을 만들고 흐름을 잡는 과정에서 AI의 도움을 적지 않게 받았다. 예전 같으면 외부 전문가와 여러 차례 오가며 시간과 비용을 들였을 일들이, 이제는 훨씬 빠르고 정교하게 준비될 수 있게 된 것이다.


필자가 운영하는 프랑스 다운 브랜드 '피레넥스' 역시 최근 AI의 도움을 크게 받은 사례가 있다. '피레넥스'는 겨울 아우터 브랜드의 특성상 시즌성이 매우 강하다. 극성수기로 구분되는 기간이 비교적 명확하고, 그 기간 안에 신상품 판매율이 빠르게 올라와야 한 해 농사를 잘 지었다고 말할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언제부터 판매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가', '어느 주차부터 반응이 가속화되는가', '지난 시즌 대비 올해의 흐름은 어떤가'를 정확히 읽는 일이다.


최근 지난 2년간의 주간 판매율 추이를 AI와 함께 분석해 보았다. 데이터를 넣고, 기준을 설명하고, 몇 가지 관점에서 비교해 달라고 요청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불과 5분 만에 꽤 깔끔한 인사이트가 도출되었다. 어느 시점부터 판매율이 본격적으로 상승했는지, 특정 주차의 흐름이 전년 대비 어떤 차이를 보였는지, 올해 운영에서 무엇을 더 앞당겨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성이 빠르게 정리됐다. 


물론 모든 과정이 자동으로 완벽했던 것은 아니다. 중간중간 계산 기준을 다시 잡아야 했고, 원자료의 기준이 어긋난 부분을 수정해야 했다. 어떤 데이터를 매출 기준으로 볼 것인지, 어떤 데이터를 출고 기준으로 볼 것인지, 판매율의 분모를 최초 입고금액으로 볼 것인지 누적 입고금액으로 볼 것인지도 계속 확인해야 했다. AI가 제시한 숫자 중에는 맥락을 잘못 이해한 부분도 있었고, 다시 질문하고 교정하는 과정도 필요했다. 결국 AI가 잘하기 위해서는 사람이 기준을 잘 잡아주어야 했다.


그럼에도 속도와 효율은 압도적이었다. 예전 같으면 직원들을 불러 하나씩 개념을 설명하고, 기준을 알려주고, 엑셀 파일을 주고받으며 수정에 수정을 거듭했을 것이다. 며칠이 지나 결과물을 받더라도, 그 안에는 다시 손봐야 할 부분이 남아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이제는 그 과정을 대표인 내가 직접 AI와 대화하며 훨씬 짧은 시간 안에 끝낼 수 있다. 전략적 사고를 할 수 있는 사람이 AI를 도구로 삼으면, 절차적인 업무의 번거로움은 놀랄 만큼 줄어든다.


솔직히 말하면, 요즘은 이런 류의 업무를 직원들에게 시키는 빈도가 확연히 줄었다. 단순 정리, 대조, 초안 작성, 비교 분석 같은 업무는 AI와 함께 처리하는 것이 더 빠르고 정확한 경우가 많아졌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마음 한구석이 무겁다. 필자가 AI에게 맡긴 그 일들은 사실 사원, 대리 시절 우리가 일을 배우던 바로 그 일들이었다. 엑셀을 붙잡고 숫자를 맞추며 판매율의 의미를 몸으로 익혔고, 상사에게 깨지고 다시 고치면서 데이터를 보는 눈이 생겼다. 그 지루하고 번거로운 과정이 결국 판단력의 밑바탕이 되었다. 지금의 젊은 세대는 그 배움의 기회도, 일할 기회 자체도 점점 줄어드는 환경에 놓여 있는 것은 아닐까. 경험이 많은 사람은 AI로 더 강해지는데, 경험을 쌓아야 할 사람은 경험할 기회를 잃는 역설이 생기고 있다.


그럼에도 분명한 사실이 하나 있다. AI 사용이 아무리 늘어도, 필자가 지금도 가장 많은 시간을 쓰고 가장 많은 일을 주고받는 영역은 여전히 사람과의 커뮤니케이션이다. 해외 본사와 시즌 물량을 협의하고, 유통사와 조건을 조율하고, 거래처와 일정을 맞추고, 직원들과 방향을 공유하는 일. 계약서 초안은 AI가 다듬어 줄 수 있어도 그 계약서에 서명하게 만드는 신뢰는 사람이 쌓는다. 투자자가 감탄한 것도 결국 계약서의 문장 자체보다는, 그 준비 과정에서 느낀 성의와 태도였을 것이다.


결국 남는 것은 사람 사이의 네트워크이고, 그 네트워크를 지탱하는 것은 태도다. 일 처리의 속도와 정확도는 점점 AI가 평준화 해줄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을 구분 짓는 것은 무엇이 남을까. 약속을 지키는 습관, 상대의 입장을 먼저 헤아리는 배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고 배우려는 자세. 이런 것들은 AI가 대신해 줄 수 없다. 젊은 세대에게 해주고 싶은 말도 결국 여기에 있다. AI를 잘 쓰는 법을 익히되, 사람에게 신뢰받는 법을 놓치지 말라는 것. 그리고 우리처럼 먼저 자리를 잡은 사람들에게는, AI가 대신해 준 시간만큼 후배들에게 판단하는 법을 가르치는 데 더 시간을 써야 할 책임이 생겼다.


미국의 동기부여 연설가 지그 지글러는 이렇게 말했다. "Your attitude, not your aptitude, will determine your altitude."(당신이 얼마나 높이 오를지는 능력이 아니라 태도가 결정한다.)


AI는 우리의 능력을 빠르게 끌어 올려주고 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이제 사람의 높이를 정하는 것은 태도다. 기술이 빨라질수록, 끝까지 살아남는 것은 결국 태도가 좋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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