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생존’ 앞에선 한가한 소리?
소비자들도 ‘친환경’ 보다 ‘경제성’ 선택
[어패럴뉴스 박해영 기자] ESG 광풍은 정말 말 잔치였나. 인플레이션과 불황이 전 세계를 덮치자 친환경, 지속 가능 이슈가 ‘한가한 소리’ 취급을 받으며 밀려나는 모양새다. 언제나 그랬듯 기업들은 ‘생존’을 이유로 들고 있다.
친환경 기술로 각광받던 소재 기업들은 패션대형사들이 투자를 거두어 들이자, 잇달아 좌초를 맞았고, 기업들의 구호에서 ESG 이슈는 점차 자취를 감추고 있다.
친환경 발수 가공 소재를 취급하는 TFJ는 최근 파산했다. 2015년 설립, 2021년까지 기업 가치 200억 원으로 약 220억 원의 투자를 유치한 이 회사는 투자금으로 두 곳에 공장을 설립했지만, 누적 적자가 발생하며 버텨내지 못했다.
가죽 재생 원사와 소재를 개발한 아코플레닝은 2019년 소재 전시회 프레미에르비죵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아르마니’와 ‘나이키’ 등을 파트너사로 확보했고, 환경 분야 벤처 기업으로 120억 원의 투자를 유치, 파주에 공장을 건설했다.
이렇게 잘 나가던 아코플레닝도 지난해부터 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김지언 대표는 “재료 중 하나인 수입 원사(RPT)의 가격이 상승한 데다, 수입 당시 환율 1,200원이 현재 1,450원으로 올랐다. 고객사 제공 단가는 고정이어서 환율을 핑계로 올릴 수 없다. 마진이 3%도 남지 않는다. 결국 파주 공장 문을 닫고, 연말에 베트남으로 이전한다. 인력도 5명으로 축소했다”고 했다.
해외 사정도 다르지 않다.
H&M, 리바이스 등이 사용해 화제가 됐던 업사이클링 소재 ‘서큘로스’의 리뉴셀도 지난해 파산했다. 물론 최근 가까스로 스웨덴 사모펀드 알토르가 인수, 신규 법인 서큘로스로 새출발하긴 했다.
이 회사의 실패 요인은 퀄리티를 일정하게 맞추지 못했고, 패션 기업들의 오더가 기대 이하였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잘 나가던 친환경 소재 기업 줄줄이 파산
큰 화제가 됐던 버섯 가죽 ‘마일로(Mylo)’를 개발한 미국 볼트스레즈도 결국 생산을 중단했다. 당시 ‘에르메스’, ‘룰루레몬’ 등이 ‘마일로’를 적용한 제품을 출시, 케어링 그룹, 아디다스 등이 기금을 조달하며 유명세를 탔었다. 하지만 인플레이션과 경기 둔화에 기금 조달에 차질이 생기면서 양산을 위한 생산 공장 확보가 미뤄졌다.
친환경 패션 브랜드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탐스, 올버즈 등이 파산하거나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여전히 건재한 경우는 파타고니아, 에버레인, 가니, 프라이탁 정도다.
국내 친환경 패션 브랜드 대부분은 연 매출 100억 원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친환경 패션 업체들은 대부분 비슷한 이유로 불안한 상황을 맞고 있다. 실질적인 지표가 이를 방증한다.
우선 글로벌 경기 침체에 따른 구매력 감소다. 맥킨지가 지난해 18개 국 1만5,000여 명의 소비자 트렌드를 조사한 결과 '지속가능성'보다 '경제성’을 보고 구매 결정을 한다는 답이 월등히 높았다. 심지어 지속가능패션 시장을 키운 MZ세대마저 돌아선 것이 확인됐다.
친환경 제품은 리사이클링이나 가공 과정으로 인해 일반 제품보다 1.5~3배 비싼 경우가 대부분이다. 불안한 한국은 물론 불경기의 세계 시장에서 외면받을 가능성이 더 커졌다.
불황 덮치자 줄줄이 등돌리는 글로벌 패션
제조 환경도 문제다. 팬데믹 이후 공급망 체계가 붕괴됐고, 원부자재, 환율 등이 모두 상승하면서 제조 비용이 너무도 큰폭으로 증가했다. 업계는 성장의 발목을 잡는 주요 요인으로 부담스런 마진 구조를 꼽는다.
투자 경직도 주요 원인 중 하나다. 지속 가능 테마로 줄곧 외부 투자 유치를 해왔지만 돈줄이 마르면서 상황이 위태로워졌다. 최근에는 물리적 지속가능보다 지속가능으로 포장할 수 있는 인공지능 분야에 투자가 쏠리고 있다. 정부도 지원을 줄여, R&D 투자도 축소되고 있다.
무엇보다 그린워싱에 대한 소비자 불신이 커졌다. 검증되지 않은 친환경 인증, 마케팅 도구로만 활용하고 ‘노 액션’으로 끝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최근에는 소비자를 비롯 정부의 감시 강화도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는 재활용 섬유 함량을 5%에서 6% 늘려 놓고, 50% 증가로 표시하거나 나무, 녹색 글씨 등으로 친환경을 위장한 경우, 일부분만 친환경 인증을 받고 전 제품으로 확대해 광고하는 경우 등을 그린 워싱으로 인정, 책임을 묻겠다고 발표했다.
이처럼 지속가능 패션은 모호하고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고 거창하게 도입되어 여러 부작용을 낳고 있다.
하지만 해외에서는 현실적인 접근으로 정착해 가는 사례가 늘고 있다. 프랑스 친환경 슈즈 ‘베자’가 그 대표적인 케이스다. 디자인, 착용감 등 제품 개발에 집중했고, 브랜드 최초로 자사뿐 아니라 타사 브랜드의 운동화 수선 서비스를 시작했다. 지난해 4,530억 원의 매출을 기록, 미국, 유럽 일대에 3,000여 개의 매장을 확보했다.
국내에서는 콘티뉴, 재클린, 플리츠마마, 레오119 등을 꼽을 수 있다. 폐소방 호수 등으로 액세서리를 만들어 판매한 ‘레오119’는 최근 직접 소재를 양산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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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래코드‘ 청담플래그십스토어 |
“진정성은 결국 꾸준한 실천 통해서만 획득”
ESG 분야 가장 앞서있는 코오롱FnC와 LF
국내 패션 기업 중 ESG 경영을 가장 실체적으로 실천하는 곳은 LF와 코오롱인더스트리Fnc를 들 수 있다.
ESG 경영이 진정성을 획득하는 조건 중 하나는 꾸준함에 있는데, 이 두 회사의 경우 적어도 그 조건을 획득했다.
LF는 2021년 업계 최초 친환경 포장 시스템인 ‘카톤랩’을 적용, 쓰레기를 최소화했다. 기존 포장 대비 매년 종이상자 약 410톤 및 포장용 점착테이프 약 0.2톤, 비닐 포장재 약 66톤의 폐기물을 절감, 온실가스 배출량을 올해 상반기 기준 전년 동기 대비 약 7% 감축했다.
이후 대표 브랜드인 ‘헤지스’는 작업 지시서, 샘플, 패션쇼를 3D로 구현하는 시스템으로 버려지는 샘플 쓰레기를 제로로 만들었다. 국내 최초 3D 가상 품평회, 버추얼 런웨이 등을 진행했고, 산림 관리 제품에만 부여되는 FSC 소재를 이용한 친환경 패키지를 도입했다.
친환경 소재 사용도 적극적이다. ‘던스트’는 친환경 소재 비중을 매년 확대하고, ‘헤지스’는 업사이클링 컬렉션을 운영중이며, 프랑스 패션 ‘바쉬’는 에코 퍼 제품군을 2배 이상 늘렸다. ‘아떼’는 100% 비건 뷰티 브랜드로 키우고 있다.
코오롱FnC는 ESG 경영 철학으로 자원 순환 패션 즉 ‘리버스(REBIRTH)’로 정하고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왔다. 약 1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당시 업계 최초 업사이클링 브랜드 '래코드'를 런칭, 올 2분기까지 되살린 재고 의류는 3만2,211개다.
팬데믹이 끝난 2022년부터는 캐시미어 채취 구획과 기간을 시스템화해 지속가능한 캐시미어 제품을 만들어 내는 소셜벤처기업 케이오에이를 인수했다. 현재 케이오에이 창업주인 유동주 상무를 주축으로 사내 지속가능경영 조직인 ESG 임팩트 PU를 만들어 보다 조직적으로 운영중이다.
이어 지난해 말 미국 LA에 글로벌 ESG 패션스토어 '서큘러 라이브러리'를 오픈했으며, 현재 몽골에 폐의류 재생 소재화 자원순환센터 '서큘러 팩토리'를 건립중이다. 이외 ESG 활동 보고서인 ‘서큘러 패션 이노베이터’도 발간했다.
국내 기업 최초로 ‘패션팩트’에 가입했는데, 패션팩트는 탄소 중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패션 기업들의 글로벌 협약이다. 샤넬, 아르마니, 랄프로렌, 나이키 등이 가입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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