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기획] 브랜딩 공식의 대전환... 통섭의 CD가 뜬다

발행 2024년 09월 05일

이종석기자 , ljs@apparelnews.co.kr

 

 

백화점·편집숍, 패션위크 등 ‘위에서 아래로’ 공식 깨져

정체성에 대한 통합적 관점, 일관된 소통 능력 부상

 

[어패럴뉴스 이종석 기자] 지난 2021년 1월 ‘보테가 베네타’의 인스타 등 모든 공식 SNS 채널이 삭제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앰버서더와 팬들이 브랜드를 스스로 노출하게끔 유도하기 위한 당시 CD 다니엘 리의 전략이었다.

 

실제 공식 계정이 없어지자 소통할 방법이 사라진 팬들은 자체적으로 브랜드의 메신저가 되기 시작했다. ‘보테가 베네타’의 소식을 올리는 별도 계정을 만들거나 자신의 계정에 브랜드 소식을 올리기 시작했다. 이후 '보테가 베네타'는 'Issued by Bottega'라는 홈페이지를 개설하고, 디지털 매거진 'issue'로 소통하는 새로운 방식을 선보였다.

 

최근에는 ‘셀린느’, ‘끌로에’를 급성장시킨 유명 CD 피비 파일로의 파격적인 행보가 화제가 됐다. 지난해 피비 파일로가 런칭한 ‘피비 파일로 스튜디오’는 자사몰만 운영하고, 상품도 한정 수량만 판매했다. 향후 1년간 패션위크 복귀나 오프라인 매장(직영점)을 열지 않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두 CD 모두 런칭과 동시에 백화점·편집숍 입점, 패션위크 진출, SNS 운영 등으로 대표되는 전통적인 방식을 따르지 않는 선택을 한 것이다.

 

18세기, 프랑스에서 시작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이는 SNS·이커머스의 성장, 명확한 정체성과 스토리가 녹여져 있어야 관심을 갖는 새로운 소비 주체인 MZ세대 등 지난 10년간의 급격한 변화에 적응해 생겨난 일이다.

 

한국섬유산업연합회(KOFOTI)의 패션넷은 재작년 7∼8월 SNS에서 인플루언서 계정을 팔로우한 653명에게 특정 제품을 구매한 경험에 대해 조사한 결과 73%가 인플루언서 계정을 보고 상품을 구매한 것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패션 인플루언서가 활용하는 대표 SNS인 인스타그램이 대중화된 건 2017~2018년부터다. 플랫폼 무신사는 11년 전만 하더라도 거래액 100억 원을 겨우 넘기는 수준이었으나 현재 유니콘 기업이 됐다.

 

바야흐로 브랜딩 공식의 대전환 시대다. CD의 역할도 변화를 맞고 있다.

 

디자이너 톰 포드 

 

CD,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는 개념은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CD는 현재까지도 세계 패션의 흐름을 좌우하는 프랑스에서 처음 탄생했다. 18세기 말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시작되면서 유럽은 대량생산 체계를 갖추게 된다. 패션 산업의 기초인 면직물 공업도 이에 크게 영향을 받았고, 이윽고 의류까지 소품종 대량생산 시스템이 널리 퍼졌다.

 

당시 열강 중 하나였던 프랑스는 이에 충격을 받아 대량생산으로 대표되는 산업화를 더 빠르게 추진했다. 그러나 문화 산업에서 만큼은 대량생산보다는 가치를 높이는 데 집중하며 차별화에 나서기 시작했다.

 

정규 교육 과정에 미학 교육을 의무화하고, 현재의 CD(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는 직군에 대한 국가 공인 제도를 세계 최초로 도입한다. 이러한 노력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미술 활동은 3~7세 수업 시간의 80%를 차지한다. 방식도 남다르다. 아이의 그림을 평가하지 않고, 그림이 어떤 의도로 만들어졌는지 대한 대화에 집중한다. 자신을 표현하고 스스로 가치를 부여하는 활동을 예술의 본질로 삼아 창의력을 키워내고 있다.

 

패션 브랜드에서 현대적 의미의 CD라는 역할 내지 기능을 제대로 정립한 대표적인 사례로는 1994년 ‘구찌’ 여성복을 총괄하게 된 톰 포드가 꼽힌다.

 

당시 톰 포드는 전권을 부여받고, ‘구찌’의 디자인부터 마케팅, 매장에 이르는 브랜딩을 진두지휘했다. 그 결과 이전 대비 매출이 13배 뛰는 대성공을 거둔다.

 

국내도 브랜딩 총괄하는 CD 활약상 증가

 

국내는 어떨까. 주로 디자인 실장이 임원 직급을 가지게 되면 CD로 불러주는 게 일반적이었다. 유통 관리에 치우친 영업 출신의 사업부장, 본부장 직책이 브랜드를 총괄하며 CD 혹은 디자인 실장과 투트랙으로 움직였다.

 

문제는 이제 더 이상 영업력에만 의존하는 브랜드 운영에 한계가 왔다는 점이다. 한국도 진정한 의미의 CD가 펼치는 통합 브랜딩이 필요한 시대가 도래했다. 대기업인 코오롱, LF, 삼성물산 등이 이를 시도하고 있다.

 

코오롱의 ‘캠브리지멤버스’, 이로맨즈‘, ’헤드‘와 ’커스텀멜로우‘를 각각 총괄하는 이지은 상무(CN사업부장), 손형오 상무(캐주얼 사업부장) 등은 디자이너 출신으로 유통과 마케팅 영역까지 총괄 중이다.

 

LF의 조보영 헤지스 액세서리 사업부장은 대기업 최초로 디자이너 출신 부사장이 됐고, LF의 자회사 씨티닷츠의 ‘던스트’ 디렉터이자 대표인 유재혁 씨도 마찬가지로 주목되는 인물이다.

 

국내 대표 디자이너 브랜드 송지오인터내셔널의 ‘송지오’, 쏠리드의 ‘우영미’, 삼성물산 패션부문의 ‘준지’의 수장인 송재우 대표, 우영미 대표, 정욱준 부사장 등은 이미 오래전부터 통합 브랜딩의 CD 역할을 통해 시장에 안착했다.

 

이머징 브랜드들도 디자이너 출신의 대표, CD 체제를 통해 브랜딩에 성공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도프제이슨’을 전개하는 신윤철 리브어레가시 대표, ‘포터리’를 전개하는 김건우 대표, ‘세터’의 손호철 대표, ‘마르디메크르디’를 전개하는 박화목, 서승완 피스피스스튜디오 대표, 이스트로그와 언어펙티드를 전개하는 이동기 대표, ‘렉토’의 정백석 CD 등이 그 주인공들이다.

 


 

K팝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민희진’

 

민희진 어도어 前 대표

 

아트 디렉터 출신으로 K팝 브랜딩 공식 재정립

그녀의 ‘유능함’과 ‘컬트적인’ 자극에 끌리는 대중들

 

지난 4월 미국 브랜드 ‘47브랜드’의 파란색 MLB모자와 일본 ‘캘리포니아 제너럴 스토어’의 초록색 스트라이프 티셔츠가 갑자기 품절됐다. 국내 인지도가 크지 않았던 브랜드가 일약 스타덤에 오른 것이다.

 

민희진 어도어 前 대표가 모회사 하이브가 제기한 경영권 찬탈 의혹을 반박하는 기자회견에 입고 나온 직후 벌어진 일이었다. 주장의 사실 여부를 떠나 욕설이 포함된 거친 단어 선택과 감정에 호소하는 모습을 지켜본 대중들은 ‘컬트적인’ 자극을 느끼며 환호했고, SNS에 그의 스타일과 관련한 패러디 컨텐츠가 도배됐다.

 

민 전 대표는 K팝 콘셉트 장인이라 불리며 음악계를 포함한 다양한 산업에서 경영자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주목받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SM출신으로, 소녀시대 ‘소원을 말해봐’의 제복, 엑소의 ‘으르렁’ 교복 컨셉, F(X)의 ‘핑크테이프’ 아트 필름 작업 등 성공 신화를 써 내려갔다. 그래픽 디자이너로 출발한 아트 디렉터 출신이지만, 악곡 선정, 비주얼 디렉팅, 마케팅 플랜 등을 총괄하는 CD의 영역을 구축한 것이다.

 

그가 총괄한 어도어의 뉴진스는 그룹명, 멤버 프로필 공개와 티저로 시작해 뮤직비디오로 이어지는 기존의 아이돌 데뷔 공식을 깨고 뮤직비디오부터 공개했다. 걸그룹 모두가 ‘쎈언니’와 ‘걸크러쉬’를 외칠때 Y2K를 바탕으로 자연스러운 레트로 감성을 구현해 10대부터 30대까지 열광하게 만들었다.

 

민 대표는 하이브의 사옥도 브랜딩의 차원으로 구현했다. 그는 유튜브 ‘하이브 레이블즈’에서 사옥에 대해 “모아 놓은 공간이 아닌, 모여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하는 사람의 니즈에 따라 다양한 공간이 존재하고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자연스럽게 모이는 공간을 추구한다는 뜻이다. 어디서든 쉴 수 있고, 어디서든 일할 수 있다. 직급과 상관없이 건물의 4면을 구성원들이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공용 공간화했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사소한 선택이 하나하나 쌓여 좋은 브랜딩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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