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창] 패션 오디세이

발행 2026년 03월 29일

박해영기자 , envy007@apparelnews.co.kr

기자의 창

 

대한잠사회 홈페이지 캡처

 

얼마 전 유력 일간신문에 당뇨치료제 광고가 났다. 내가 다소 놀랐던 것은 광고주가 ‘대한 잠사회’라는 것이었다. 대한 잠사회는 제약회사가 아니다.

 

누에에서 뽑아내는 실크사를 공급했던 생산자 단체다. 지금은 잠사 회관이 여의도(국회의사당 건너편)에 있지만 예전에는 종로 2가 네거리 4층 건물이었다.

 

당시 이 회관 안에는 실크(견연사) 수출을 관장했던 생사 수출조합이 있었고 뽕나무 생산 농가 단체인 상묘 조합, 누에알을 담당하는 잠종 협회도 같이 존재했다. 말 그대로 잠사회는 실크 산업과 관련된 단체의 연합회 격이었다.

 

규모나 덩치로 따지면 당시 방직협회와 어깨를 겨루었고 역사는 더 깊었다. 그랬던 대한 잠사회가 건강 보조제인 당뇨치료제를 판매하는 광고를 냈다는 게 감회가 새로웠다. 그렇다면 잠사회가 왜 이렇게 몰락에 가깝게 축소되었을까.

 

한마디로 국제 경쟁에서 중국에 밀렸기 때문이다. 1960년대 실크사는 상위권에 랭크되어있는 주요 수출 품목이었다. 최대 수출국은 일본이었다. 그러나 중국이 ‘죽의 장벽’에서 벗어나 세계 시장에 진입하면서 한국은 직격탄을 맞았다. 원가 개념이 없었던 중국의 가격 공세에 한국 제사업은 손쓸 틈 없이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 당시 기억으로 한국이 생산 오퍼 가격을 파운드당 10불을 제시하면 중국은 9불을 제시했고, 다시 우리가 8불로 내리면 다시 7불로 다운시키는 그런 식이었다.

 

한마디로 게임이 안 되는 역부족이었다. 그렇다면 국내 제사 업체들은 이런 상황을 전혀 몰랐을까. 물론 아니다. 그러나 정부에 의존하는 무역 체계로 메너리즘에 빠져 그래도 “어떻게 되겠지” 하는 안일한 자세를 보였다.

 

결과는 수년 사이 존립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지금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대한 잠사회의 당뇨치료제 광고가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이 같은 사례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지금의 모든 패션 제품에도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닐까 생각된다.

 

말 그대로 상전벽해(桑田碧海)가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씁쓸한 마음이 든다.

 

박해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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