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근] AI 시대의 관리자 (하)

발행 2026년 06월 07일

어패럴뉴스 , appnews@apparelnews.co.kr

최석근의 '디지로그 2.0'

 

이미지=챗GPT

 

상품기획에서는 AI가 전년 판매 데이터, 검색어, 리뷰, 기상 변수, 경쟁사 가격을 빠르게 정리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시즌 우리 브랜드가 어떤 고객에게 어떤 감정의 상품을 제안할 것인지는 사람이 결정해야 한다. 디자인에서는 AI가 무드 보드와 컬러 조합, 실루엣 변주를 제안할 수 있다. 그러나 브랜드의 미감과 고객의 몸에 닿는 착용감은 여전히 디자이너의 감각과 경험이 필요하다.

 

소싱과 생산은 더 그렇다. 원가 비교, 납기 리스크, 공장별 품질 이슈, 발주 이력 분석은 AI가 도울 수 있다. 그러나 원단을 만지고, 봉제 난이도를 판단하고, 샘플의 미세한 어설픔을 잡아내는 일은 단순 자동화로 해결되지 않는다. 최근 필자가 방문해 대화를 나누었던 한 패션 제조 지원센터에서도 자동 재단기를 운영하더라도 실제 패턴과 원단을 판단하는 데는 20~30년 경력자의 눈과 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이야기는 같은 맥락 안에 있다.

 

이것이 패션 AI 전환의 본질이다. AI가 사람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약한 일을 가져가고 강한 일을 더 선명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최근 필자의 선후배들을 보아도 이 흐름은 이미 갈리고 있다. 어떤 이들은 AI를 자신의 실무 파트너로 삼아 시장조사, 기획서 작성, 고객 분석, 콘텐츠 제작, 업무 자동화를 빠르게 흡수하고 있다. 이들은 예전보다 더 많은 일을 더 짧은 시간에 수행하며 점프업하고 있다. 반대로 과거의 직급, 경험, 회의 주도권, 결재 라인에 기대어 일하던 사람들은 점점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다. 한때 강점이었던 '관리 경험'이 이제는 약점이 되는 순간이다.

 

필자가 이전 칼럼에서 패션 AX가 힘든 이유를 "시스템을 깔면 끝이라고 믿는 착각"이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전환의 출발점은 사람, 전략, 프로세스, 문화다. 기술은 수단이고, 변화는 일하는 방식에서 일어난다. 그렇다면 패션회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다음의 다섯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상사도 직접 뛰어야 한다. AI 시대의 리더는 보고받는 사람이 아니라 직접 써보고, 직접 묻고, 직접 검증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팀원에게 "AI로 해봐"라고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먼저 기획 회의, 판매 분석, 경쟁사 조사, CRM 캠페인 설계에 AI를 붙여보고 그 가능성과 한계를 알아야 한다. 둘째, 기술 도입이 아니라 업무 재설계부터 해야 한다. 기획, 디자인, 소싱, 생산, 물류, 마케팅, 영업의 각 프로세스를 펼쳐놓고 "어디서 반복이 발생하는가, 어디서 판단이 지연되는가, 어디서 정보가 끊기는가"를 먼저 봐야 한다. AI는 그 다음이다.

 

셋째, 패션 도메인 지식을 조직의 자산으로 바꿔야 한다. AI에게 좋은 답을 얻으려면 좋은 맥락을 줘야 한다. 브랜드의 고객 정의, 핏 기준, 원가 구조, 시즌 운영 방식, 매장과 고객의 언어, 반품 사유, 소재 특성, 협력업체 이력 같은 정보가 정리되어야 한다. 이것이 앞으로 패션회사의 '도메인 API'가 된다. 넷째, 중간 관리자를 AI 플레이어 코치로 재훈련해야 한다. 중간관리자는 더 이상 단순 전달자가 아니다. AI 에이전트를 활용해 팀의 반복 업무를 줄이고, 팀원이 더 깊은 판단과 창의적 실행에 집중하도록 돕는 사람이어야 한다. 보고서를 취합하는 관리자가 아니라, 업무 흐름을 설계하고 실행력을 높이는 코치가 되어야 한다. 다섯째, 평가는 직급이 아니라 역량으로 바뀌어야 한다. AI 시대에는 "몇 명을 관리했는가"보다 "어떤 문제를 정의했고, 어떤 워크플로우를 만들었고, 어떤 성과를 냈는가"가 중요해진다. 직급이 아니라 실행 경험, 도메인 지식, AI 협업 능력, 문제 해결력이 새로운 평가 기준이 된다.

 

패션 조직의 미래는 더 많은 보고 라인이 아니다. 더 빠른 실행 단위다. 더 명확한 책임이고 더 깊은 도메인 지식이다. 사람과 AI가 함께 움직이는 새로운 워크플로우다. AI로 인한 거대한 수평화는 '위기'다. 하지만 실력 있는 사람에게는 '기회'이기도 하다. 패션 비즈니스는 결국 사람의 몸, 감각, 욕망, 생활을 다루는 산업이다. 그래서 AI가 강해질수록 역설적으로 더 깊은 사람 이해와 현장 경험이 중요해진다.

 

AI 시대의 패션 조직은 이렇게 진화해야 한다. 관리에서 실행으로, 보고에서 워크플로우로, 직급에서 역량으로, 그리고 기술 도입에서 일하는 방식의 재설계로! 이 변화의 원년이 이미 시작됐다. 이제 질문은 하나다. 나는 관리자인가, 실행자인가. 그리고 우리 조직은 AI를 쓰는 조직인가, AI와 함께 일하는 조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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