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광의 '인생이 패션'
사업을 하다 보면 생각보다 억울한 일이 많다. 대기업 조직에서 15년 넘게 일해 온 나는 더욱 낯선 경험이었다. 조직 안에서는 시스템이 일정 부분 나를 보호해 주고, 책임과 역할도 비교적 명확하게 정리된다. 그러나 시장이라는 곳은 다르다. 누군가의 오해가 사실처럼 굳어지기도 하고, 의도하지 않은 소문이 파도처럼 번지기도 한다. 때로는 성과가 날수록 시기와 질투도 따라온다.
최근 화제가 된 호카(HOKA) 국내 전개사 조이웍스앤코 대표의 폭행 사건, 그리고 호카 본사의 전격 계약 해지는 이 업계에서 '전개사'라는 존재가 무엇을 감당하며 일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 사례였다. 보도에 따르면 조이웍스앤코 전 대표는 하청업체 관계자 폭행 논란 이후 사과문을 내고 대표직에서 물러났고, 호카 본사(데커스)는 '무관용 원칙'을 언급하며 해당 유통 파트너와의 관계를 종료했다.
이런 사건을 접하면 업계 종사자들은 본능적으로 안다. "아, 이건 쉽게 정리될 사안이 아닐 수 있겠구나'. 글로벌 브랜드의 본사는 '이미지'라는 자산에 대해 극도로 민감할 수밖에 없다. 논란이 커지는 순간, 파트너십을 유지하는 편익보다 브랜드 리스크를 절연하는 선택이 더 합리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계약은 때때로 차갑고 빠르게 정리된다.
다만, 내가 업계에서 가끔 듣는 얘기 중에는 "겉으로 보이는 장면이 전부는 아닐 수도 있다"는 말도 있다. 물론 어떤 이유로든 폭력적 행동이 정당화될 수는 없지만, 현장의 맥락이나 관계의 꼬임이 단순히 '한 사람의 일방적 악의'만으로 설명되기 어렵다는 뉘앙스의 이야기들이 들리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부분이 사업을 더 피곤하게 만드는 지점이다. 누구나 본인의 입장이 있고, 누구나 억울한 사정이 있고, 그 사정이 온전히 설명되기도 전에 사건은 이미 '결론'으로 굳어져 버리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요즘 더 자주 생각한다. 그럴수록 결국 남는 건 태도라는 사실을. 사업에서 '예의'는 단순한 매너가 아니라, 가장 기본적인 리스크 관리다. 시기와 오해는 막기 어렵지만, 예의는 선택할 수 있다. 말투 하나, 대금 정산 하나, 거래처를 대하는 자세 하나가 쌓여 결국 브랜드의 체질이 된다. 특히 전개사라는 역할은 브랜드와 시장 사이의 '번역가'이면서 동시에 '완충재'다. 일이 커질수록, 그리고 외풍이 거셀수록 그 완충재는 더 단단해야 한다.
애초에 글로벌 브랜드를 특정 국가에서 전개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고난도의 작업이다. 단순히 물건을 들여와 파는 일이 아니다. 전개사는 그 브랜드가 왜 존재하는지, 어떤 철학을 갖는지 이해해야 한다. 그 철학이 해당 시장의 취향과 문화, 채널 구조와 얼마나 '궁합'이 맞는지도 판단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무리한 확장이 아니라 체계적인 접근으로, 건전한 성장 곡선을 만들어 내야 한다.
이 과정의 주체는 당연히 이런 역량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문제는 역량이 있다고 해서 그 역할이 영원히 보장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성과가 쌓일수록 묘한 불안이 함께 따라온다. "내가 키워 놓은 시장인데, 언젠가 주체가 바뀔 수도 있다."
솔직히 나 역시 비슷한 마음을 안고 사업을 한다. 전개사는 '브랜드를 키우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언제든 교체될 수 있는 파트너'라는 모순을 품고 살아가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브랜드가 한 나라의 시장에서 뿌리내리고 성장해 가는 과정에는, 숫자로만 환산되지 않는 보람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보람은 결국 사람을 통해 만들어진다. 거래처, 생산 파트너, 내부 팀원들. 누가 봐도 지루한 운영의 반복 속에서 성장은 완성된다.
이번 사건을 보며 제가 다시 마음속에 적어 둔 문장이 하나 있다. 18세기 작가 메리 워틀리 몬태규의 "예의는 비용이 들지 않지만, 모든 것을 산다.(Civility costs nothing, and buys everything.)"
사업을 하다 보면 억울한 일도 생기고, 오해도 받고, 때로는 이유 없이 미움을 받을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우리가 붙잡을 수 있는 건 화려한 말이 아니라 평소의 태도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이 업계에서 가장 오래가는 힘은 '속도'나 '규모'보다 신뢰인 경우가 많다.
오늘도 불안정한 계약 구조 속에서, 누군가는 브랜드를 대신해 현장을 뛰고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그 중 한 사람이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신한다. 시장은 냉정해도, 태도는 남는다. 그 태도가 결국 다음 계약을 만들고, 다음 판을 열어주는 경우를 나는 여러 번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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