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지민] 존재하지 않는 모델에게도 초상권이 있을까

발행 2026년 07월 19일

어패럴뉴스 , appnews@apparelnews.co.kr

양지민의 '법대로 톡톡'

 

AI 생성 이미지
"AI가 여러 사람의 얼굴을 참고해 완전히 새로운 인물을 만들어냈다고 하더라도, 결과물이 특정 모델이나 배우를 쉽게 떠올리게 할 정도로 유사하다면, 이름을 표시하지 않았더라도 초상권 침해가 문제 될 수 있다."

 

화려한 옷을 입은 모델이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다. 피부에는 작은 잡티 하나 없고, 어떤 각도에서도 완벽한 비율을 유지한다. 그런데 이 모델은 촬영장에 온 적도, 옷을 직접 입어본 적도 없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인공지능, 즉 AI가 만들어낸 가상 모델이기 때문이다.

 

패션업계에서 AI 모델은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브랜드들은 생성형 AI를 이용해 가상의 모델을 만들거나, 실제 모델의 디지털 복제본을 제작해 광고 이미지에 활용하고 있다. 최근에는 실제 모델과 협의해 AI로 이미지를 변형하고, 전통적인 촬영에 준하는 보수를 지급하는 사례도 등장했다. 한 번 촬영한 모델의 모습을 바탕으로 여러 장소와 의상을 결합할 수 있어 광고 제작에 필요한 시간과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완전히 가상으로 만들어진 모델에게 초상권이 인정될까. 아니다. 현재 법체계에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AI 모델 자체가 사람과 같은 초상권을 갖는다고 보기는 어렵다. 초상권은 사람의 얼굴과 신체가 함부로 촬영되거나 공표·이용되지 않을 권리로서 인간의 인격권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법원도 사람의 초상은 개인 인격의 상징이므로, 본인의 얼굴과 신체가 촬영된 사진이 함부로 공표되거나 이용되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판단해 왔다.

 

문제는 가상 모델이 특정 실존 인물을 닮았을 때 발생한다. AI가 여러 사람의 얼굴을 참고해 완전히 새로운 인물을 만들어냈다고 하더라도, 결과물이 특정 모델이나 배우를 쉽게 떠올리게 할 정도로 유사하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름을 표시하지 않았더라도 일반인이 광고 속 인물을 특정인으로 인식할 수 있다면 초상권 침해가 문제 될 수 있다.

 

특히 유명인의 얼굴이나 신체적 특징을 광고에 이용했다면 경제적 가치의 무단 사용, 즉 이른바 퍼블리시티권 침해 문제가 더욱 뚜렷해진다. 우리 부정경쟁방지법은 국내에 널리 알려져 경제적 가치를 가지는 타인의 성명·초상·음성·서명 등 식별표지를 공정한 상거래 관행이나 경쟁 질서에 반하는 방법으로 무단 사용하는 행위를 부정경쟁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유명 모델과 매우 닮은 AI 인물을 만들어 그 모델이 실제로 브랜드를 광고한 것과 같은 효과를 얻었다면, 단순한 우연이나 창작적 변형이라는 주장만으로 책임을 피하기 어려울 수 있다.

 

또 다른 사례도 있다. 실제 모델의 사진을 AI 학습이나 디지털 복제에 사용하는 경우이다. 이때에는 계약 내용도 매우 중요하다. 모델이 일반적인 사진 촬영에 동의했다고 해서 자신의 얼굴과 체형을 AI에 학습시키거나, 디지털 복제본을 만들어 수년간 새로운 광고에 반복 사용하는 것까지 모두 허락했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반복 사용에 동의하더라도 어느 범위까지 사용을 허락했는지 여부가 추가적으로 문제될 수 있다.

 

아마도 앞으로 모델 계약서에는 단순한 '사진 사용 동의'를 넘어 AI 학습 허용 여부, 디지털 복제본의 사용 기간과 매체, 얼굴·체형의 수정 범위, 해외 광고 및 2차 광고 사용 여부, 추가 보수 지급 기준 등이 구체적으로 기재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다른 측면으로는, 소비자의 알 권리 역시 빼놓을 수 없다. AI 모델이 실제로 옷을 입은 것처럼 표현했지만 현실에서는 같은 핏이나 소재감을 구현할 수 없다면, 이는 단순한 이미지 연출을 넘어 소비자를 오인시키는 광고가 될 수 있다. 표시·광고법은 소비자를 속이거나 잘못 알게 할 우려가 있는 부당한 표시·광고를 금지하고 있으며, 소비자 오인 여부는 사업자의 의도보다 소비자가 광고 전체에서 인지하는 내용을 중심으로 판단한다.

 

더욱이 2026년 1월 22일부터 시행된 인공지능 기본법은 생성형 AI를 이용해 만든 결과물에 대해 그 사실을 표시하도록 하는 투명성 의무를 두고 있다. 실제 사람과 구별하기 어려운 AI 모델을 광고에 사용할수록, 소비자가 가상 이미지임을 인식할 수 있도록 명확하게 알리는 것이 중요해졌다.

 

AI 모델은 기존 모델을 완전히 대체하는 존재가 될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모델의 활동 영역을 확장하는 도구가 될 수도 있다. 실제 모델이 자신의 디지털 복제본에 대한 통제권을 가지고, 사용될 때마다 정당한 보수를 받는다면 모델은 직접 촬영하지 않고도 여러 국가와 매체에서 활동할 수 있다. 문제는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기술을 통해 발생한 이익이 누구에게 돌아가고, 위험은 누가 부담하느냐에 있다.

 

존재하지 않는 AI 모델에게 초상권은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모델을 만드는 과정에는 실제 사람의 얼굴과 몸, 그리고 다양한 계약 관계가 숨어 있을 수 있다. 패션이 인간의 개성과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산업이라면,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그에 내재된 인간을 지워서는 안 된다. AI가 패션의 새로운 얼굴이 되는 시대일수록 우리는 그 얼굴 뒤에 있는 사람의 권리를 먼저 살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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