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스포츠, 패션 시장의 판을 흔들다
김홍기의 ‘패션 인문학’

발행 2020년 10월 0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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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찌가 글로벌 인기 모바일 게임 '테니스 클래시'와 진행한 콜라보레이션 

 

E-스포츠는 인간을 매혹하는 이 모든 놀이요소를 가진 세계다. 구찌는 이제 스포츠웨어의 외연을 수많은 돌발적 사건과 우연, 경쟁을 위한 협업을 요구하는 디지털의 세계로 확장시켰다. 그 세계 속에서 경쟁하는 이들의 정서적 요구, 구찌 브랜드를 자신의 갑옷처럼 입고자 하는 이들의 욕망은 경제적으로 환원하기란 어렵다.

 

스포츠만큼 패션을 변화시킨 것이 있을까.

 

역사적으로 스포츠는 인간이 자신의 몸을 바라보는 태도를 바꿔주었다. 18세기부터 본격화된 여성들의 트레킹, 등반을 위해 후드가 달린 여행용 의상이 나왔고, 승마를 위해 입었던 라이딩 코트는 오늘날 옷장 속 클래식이 된 코트의 원형이다.

 

어디 이뿐인가. 19세기 말 자전거의 발명과 함께 여성들은 바지를 입기 위한 정치투쟁에 돌입했고, 거추장스럽던 당대 여성복의 장식적 요소들을 과감하게 제거했다. 샤넬은 1924년 프랑스의 올림피아드 개최를 축하하는 오페레타 <청색열차>의 의상을 맡아, 당시 막 유행하던 수영과 테니스, 골프웨어를 디자인해 선보였다. 속도와 효율성, 경쾌함은 스포츠가 보여준 새로운 시대의 감성이자 변화의 좌표였다. 스포츠는 젊고 건강하며, 활동적인 느낌과 삶의 긍정성에 바탕을 둔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어냈다. 스포츠 분야는 최근 인터넷을 통한 온라인 스포츠게임을 뜻하는 E-스포츠로 진화 중이다. 게임 시장 조사 전문 기관인 뉴주(Newzoo)는 2019년 세계 디지털 게임 시장 규모를 1,521억 달러로 발표했다. 영화 시장의 규모가 4,500억 달러, 광고 시장의 규모가 6,500억 달러 규모임을 고려해볼 때, 전 세계의 문화산업에서 게임이 차지하는 위상은 놀랍다. 패션산업은 이러한 변화에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특히 럭셔리 패션 기업들의 E-스포츠와의 협업은 그 규모와 방식, 밀도의 측면에서 자세하게 읽어볼 필요가 있다.

 

구찌가 글로벌 인기 모바일 게임 '테니스 클래시'와 진행한 콜라보레이션 

 

구찌는 올해 5월 모바일 게임 컴퍼니인 와일드 라이프와 협약을 맺고 테니스 클래시 게임 내 캐릭터들이 입은 의상과 유사한 옷을 만들었다. 팬들은 요나와 다이애너라는 두 가상의 캐릭터와 같은 옷과 장비를 입게 될 기회를 갖는다. 선수들은 게임 내 구찌 오픈이라는 토너먼트에 참여할 수 있고 이곳에서 실제 테니스 게임을 하는듯한 몰입도 높은 경험을 할 수 있다. 게임 참가자들은 토너먼트에 참여하면서 구찌가 만든 테니스 상품을 사용할 수 있는데, 여기에는 라켓, 운동화, 양말, 헤드기어, 의상 모두 포함된다. 테니스 클래시를 통해 구찌 웹사이트에 접속해서 좋아하는 옷을 살 수 있다. 올 7월에는 아예 영국의 E-스포츠 전문팀인 프나틱과 협업해서 한정판 시계까지 내놓았다.

 

 

구찌 X 프나틱
구찌 X 프나틱

 

 

왜 패션 브랜드들은 E-스포츠와 손을 잡으려 안달이 난 것일까. 코로나로 인한 비대면 환경의 중요성이 커진 일면도 있겠지만, 구찌의 협업은 E-스포츠를 문화적 변혁의 힘으로 만드는 요소, 즉 게임 커뮤니티를 구성한 수많은 잠재고객을 타진하기 위한 전략이다. 이런 현상을 인문학적으로 접근하려면 네덜란드의 문화사가 요한 하위징아가 쓴 <호모 루덴스 : 놀이하는 인간>를 읽어야 한다. 그는 인간의 놀이를 4가지로 규정한다. 놀이를 경쟁을 뜻하는 아곤, 확률을 뜻하는 아레아, 모방을 뜻하는 미미크리, 현기증을 뜻하는 일링크스로 구분해 정의한다.

 

루이비통이 라이엇게임즈와 협업을 통해 제작한 '2019 롤드컵' 트로피

 

E-스포츠는 본질적으로 경쟁에 토대한 놀이다. 스포츠 게임은 팀 경기가 되는 순간, 경쟁의 밀도가 치솟는다. 팀별 경기는 참여자들이 모험 과정에서 자신들이 직접 서사를 만들 수 있다. 게임의 서사는 영화나 광고의 서사처럼 고정되어 있지 않다. 게임을 시작하는 위치나 획득하는 무기가 무작위로 나오기에 게임의 승패는 확률게임의 형태를 띤다. 여기에 현실 세계의 신체가 아닌 가상공간의 아바타를 통제함으로써 플레이를 한다.

 

하위징아의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미미크리, 누군가를 모방하고 따라 함으로써 얻는 쾌락이다. 아바타를 운용하는 현실 능력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아바타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과 이야기를 쓰고 싶은 인간의 욕망도 커진다. 구찌의 패션과 소품들이 전략적으로 유효해지는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E-스포츠는 인간을 매혹하는 이 모든 놀이요소를 가진 세계다. 구찌는 이제 스포츠웨어의 외연을 수많은 돌발적 사건과 우연, 경쟁을 위한 협업을 요구하는 디지털의 세계로 확장시켰다. 그 세계 속에서 경쟁하는 이들의 정서적 요구, 구찌 브랜드를 자신의 갑옷처럼 입고자 하는 이들의 욕망은 경제적으로 환원하기란 어렵다. 그만큼 큰 시장이다. 구찌는 패션 브랜드들이 코로나 이후 나가야 할 길을 가장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김홍기 패션 큐레이터
김홍기 패션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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