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스카니의 태양을 그리며
남훈의 ‘패션과 컬처’

발행 2020년 12월 0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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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투스카니
이탈리아 투스카니

 

 

코로나 바이러스가 퍼져가던 초기, 이탈리아는 중국과 더불어 전 세계에서 가장 걱정스러운 나라였다. 오래도록 찾아다니며 사람과 풍경, 음식과 와인을 사랑하게 된 나라였지만, 그들의 아름다운 문명에 비해 사회를 지탱하는 구조가 엉성하다는 사실을 목격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전염병은 인종과 국경, 체제와 빈부를 가리지 않아, 어느 정도의 시차를 두며 지구인들의 일상을 잠식해 들어갔다.  


하지만 일에 관해서라면 꼭 그렇지도 않았다. 스카이프나 줌을 통한 회의, 메신저를 통한 업무, 재택근무를 해도 크게 지장 없는 시스템으로 나름 일상의 반을 유지해 왔다. 그렇게 살아온 2020년은 우리 삶이 여러 방면에서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게 해 주었다.   


내년 1월에도 피티워모는 참석하지 못할 거 같다. 자가격리를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본 바이어들은 이 시국에도 불구하고 간다고들 하는데, 돌아와서 자가격리를 해야 하는 한국 바이어들은 아무래도 방문이 어렵다. 매년 1월과 6월이면 꼬박꼬박 다녔던 피렌체. 해외를 못 다녀 답답하겠다는 주변의 이야기를 종종 듣지만 대신 한국에서 책과 영화를 보며, 전에 없던 여유를 갖는 시간이 늘어 좋기도 하다.


피렌체에서 새로운 컬렉션을 구성하는 일을 마치고 나면, 가끔 와인을 즐기러 가곤 하던 투스카니는 완만한 구릉 지대의 이탈리아 중북부 지방이다. 피렌체나 시에나, 피사 같은 도시들이 알려져 있고, 와인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곳이다. 


특히 붉은 색 수탉 로고가 인상적인 키안티 와인들은 이탈리아 고유의 포도 산지오베제로 만들어진다. 타닌의 단단한 맛과 기분 좋은 산미가 잘 어우러져 고기나 올리브, 치커리나 익힌 해산물과 골고루 어울리는 보편적인 와인이다. 프랑스 와인이 함께 먹는 음식에 대단히 민감한데 비해 이탈리아 와인은 어느 와인을 골라도 평균적인 가성비가 좋고 매칭되는 음식에 잘 스며드는 경향이 있다. 

 

 

'투스카니의 태양' 스틸컷      /사진=네이버 영화
'투스카니의 태양' 스틸컷       /사진=네이버 영화

 


​다시 그곳을 가게 될 날이 내년일지 혹은 후년일지 몰라 요즘은 이탈리아 와인을 주로 마시고 기억나는 도시들이 나오는 영화를 찾아보기도 한다. 특히나 좋아하는 배우 다이안 레인이 나오는 영화 <투스카니의 태양(2013)>을 다시 찾아보았다. 영화는 평생 글만 쓰다 이혼을 하게 된 중년 여성의 새로운 인생 발견기다. 상처받은 현실을 떠나 새로운 공간인 이탈리아로 이주한 그녀가 겪게 되는 낯선 환경, 미국과 다른 문화,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 이탈리아 특유의 생활의 불편함, 그리고 여성에 대한 과도한 친절 속에서 주인공이 자신만의 삶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유쾌하게 그리고 있다. 


심각해지는 것이 반드시 진실에 가까워지는 건 아니라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독백처럼, 이 영화는 운명, 환경이나 사건보다 삶을 만들어가는 에너지가 되는 자존감을 키워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다. 우연히 찾아오는 행운을 기대하기보다, 천천히 묵묵히 자신의 일상을 지키며, 자신의 시간을 써서 인생을 고쳐나가는 건 코로나와 함께 살아가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태도가 아닐까.  


하나의 사건이나 행동은 일방적인 결과만을 가져오지는 않는다. 오히려 변증법처럼 또 다른 깨달음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지금 격리되고, 거리를 두는 이 시간은 오히려 새로운 생각을 하기에 좋은 기회다. 코로나가 우리에게 주는 고통은 우리가 심각하게 여기지 않던 진실을 대면하게 하고, 인생의 우선순위를 생각해 보게 만들며, 공동체의 의미를 숙고하게 한다. 백신과 치료제가 나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잊어버릴 수도 있겠지만, 나 하나의 행동이 전적으로 개인적인 것일 수 없음을 우리는 이제 알고 있다. 팬데믹은 분명 고통이지만 K방역에 대한 세계의 찬사 속에 ‘우리’의 자존감은 분명 한 차원 높아진 것 같다.

 

 

남훈 알란컴퍼니 대표
남훈 알란컴퍼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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