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기획] 아시아의 관문 '한국', 글로벌 패션이 몰려 든다

발행 2026년 09월 30일

오경천기자 , okc@apparelnews.co.kr

 

서울 명동 상권 /사진=어패럴뉴스DB

 

본사 직접 투자 증가…아시아의 '테스트 베드'

'아시아 핵심 상권' 성수·한남·도산·명동 선제적 투자

 

[어패럴뉴스 오경천 기자] 글로벌 패션 기업들의 아시아 전략에서 한국의 위상이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과거 아시아 진출의 최우선 시장이 일본이었다면 최근에는 한국을 첫 진출지로 선택하거나 지사를 설립해 직접 사업에 나서는 글로벌 기업이 늘고 있다. 아시아 최초 매장을 비롯해 브랜드를 대표하는 대형 플래그십도 서울에 잇달아 등장하고 있다.

 

한국이 단순 판매시장을 넘어 아시아 소비자의 반응을 확인하고 향후 사업 전략을 결정하는 테스트베드이자 전략 거점으로 부상한 것이다.

 

한국 기업과의 파트너십도 달라지고 있다. 현지 상품 기획은 물론 본사에 없던 새로운 카테고리를 개발하거나 다른 국가의 사업권까지 맡기는 등 권한의 범위가 크게 확대되고 있다.

 

과거 아시아 패션의 1번지는 일본

 

과거 아시아 진출을 계획하는 글로벌 패션기업들의 1순위 국가는 일본이었다. 탄탄한 제조 생태계와 상품 기획력, 막강한 소비시장을 기반으로 일본 기업들은 상품 기획과 생산, 유통, 마케팅까지 폭넓은 권한을 확보했다.

 

대표적으로 산요상회는 장기간 ‘버버리’의 일본 라이선스 사업을 맡아 일본 전용 '버버리 블루라벨'과 ‘버버리 블랙라벨’까지 개발했다. '랄프 로렌'은 세이부백화점에 마스터 라이선스를 맡겼고, '노스페이스'는 골드윈과 손잡고 '퍼플라벨' 등 일본 시장에 특화된 상품을 개발했다.

 

글로벌 IP에 일본의 기획·생산력을 결합해 아시아 시장을 키우는 구조가 일찌감치 자리 잡은 것이다.

 

반면 한국은 일본에 비해 소비시장과 패션산업의 규모가 작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글로벌 기업들에게 판매채널의 하나로 인식됐다.

 

하지만 최근 상황은 크게 달라지고 있다.

 

K팝과 드라마, 뷰티, 푸드 등 K컬처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한국에서 만들어지는 트렌드가 중국과 일본, 대만, 동남아를 넘어 글로벌 시장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고, 여기에 한국 패션 기업들이 보여준 상품 기획과 브랜딩 능력도 주목받기 시작했다.

 

판매 시장에서 '전략적 파트너'로

 

특히 최근 한국 기업들은 단순 유통을 넘어 상품을 직접 개발하고, 한국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아시아 사업까지 맡는 등 역할과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이랜드는 신발 중심이던 '뉴발란스'를 의류와 키즈까지 확장해 연 매출 1조 원의 메가 브랜드로 육성했고, 영원무역그룹 역시 ‘노스페이스’의 키즈와 화이트라벨 등을 선보이며 1조 원 규모로 사업을 키웠다.

 

'지포어'는 한국에서의 성공을 기반으로 중국과 일본 사업권까지 확보했고, 'PXG'는 한국에서 기획한 상품을 해외로 역수출하며 글로벌 의류 사업으로 영역을 넓혔다. 하이라이트브랜즈는 '시에라디자인'의 한국과 중국·대만·홍콩 등 아시아 4개 지역 상표권을 인수해 중화권 사업까지 추진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글로벌 기업들이 한국을 단순 판매국이 아니라 브랜드를 함께 키워가는 전략적 파트너로 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글로벌 본사 차원에서의 투자도 달라지고 있다.

 

최근 수년간 글로벌 패션 기업들의 한국 직진출이 크게 늘었고, 신규 브랜드의 아시아 첫 매장이나 대형 플래그십 투자도 서울에 집중되고 있다.

 

이를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서울의 상권 지도다. 과거 도쿄 오모테산도·다이칸야마, 홍콩 소호, 상하이 신천지 등이 아시아 패션 트렌드를 대표하는 상권이었다면, 최근에는 성수·한남·도산·명동이 서울을 넘어 아시아의 거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글로벌 패션의 1호 진출지

 

미국 프리미엄 애슬레저 '알로(Alo)'는 작년 7월 서울에 아시아 첫 플래그십을 열었다. 지하 2층~지상 4층, 약 1,540㎡ 규모로 제품 판매와 브랜드 경험을 결합한 공간이다.

 

'룰루레몬'은 지난해 11월 강남역 상권에 아시아 첫 플래그십을 열었다. 뉴욕 소호와 함께 새로운 글로벌 스토어 디자인을 처음 적용했으며,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한 층 전체를 남성 상품으로 구성했다.

 

또 미국 럭셔리 브랜드 ‘앙팡 리쉬 데프리메’는 지난해 5월 도산공원에 아시아 첫 플래그십을, '시즈(SEASE)'는 10월 현대 무역센터점에 한국 1호점이자 아시아 최초 매장을 열었다. 올해 들어서는 프랑스 '아미(AMI)'가 한남동에, 일본 '골드윈'이 도산공원에 각각 글로벌 최대 규모의 매장을 오픈했다.

 

한국 시장의 위상 변화는 단순히 소비시장 규모가 커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트렌드 변화와 새로운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 반응이 빨라 글로벌 기업들이 상품과 마케팅의 성공 가능성을 단기간에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 강점이다.

 

급증하는 외국인 관광객도 중요한 호재다. 올해 1~7월 방한 외국인은 1,280만 3,042명으로 전년 동기보다 21.3% 증가했다. 같은 기간 외국인 관광객 카드 소비액은 12조 859억 원으로 48.3%나 늘었다.

 

K-패션과 K-뷰티, K-컬처가 만들어 낸 트렌드 파급력과 외국인 관광객 증가까지 더해지면서 한국은 이제 선제적 투자가 이루어지는 시장으로 격상됐다.

 


 

'메이드 바이 코리아'…주목받는 'K-브랜딩'

 

 

한국만의 라이선스·브랜딩 전략 잇달아 성공

비패션 IP를 패션 브랜드로...다시 해외 수출

 

글로벌 패션 기업들이 한국을 주목하는 배경에는 국내 패션 기업들의 뛰어난 상품기획과 브랜딩 능력이 있다.

 

특히 패션과 무관했던 글로벌 IP를 하나의 패션 브랜드로 만들어 내는 데 있어 한국 기업들의 역량은 크게 인정받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MLB, 디스커버리 익스페디션, 내셔널지오그래픽 어패럴, 코닥어패럴, UFC스포츠 등이다.

 

F&F는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의 구단 로고와 헤리티지를 스트리트 패션으로 재해석했고, 방송 채널 디스커버리의 탐험 이미지를 아웃도어 패션으로 발전시켜 '디스커버리 익스페디션'을 대형 브랜드로 키웠다.

 

또 더네이쳐홀딩스는 다큐멘터리·탐험 IP를 '내셔널지오그래픽 어패럴'로, 하이라이트브랜즈는 카메라·필름의 헤리티지를 '코닥어패럴'로 각각 패션 브랜드화했다. 신한코리아도 세계 최대 종합격투기 단체 UFC와 의류 사업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UFC스포츠'를 런칭해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비패션 IP를 독자적인 상품과 디자인, 유통, 마케팅을 갖춘 패션 브랜드로 성장시키는 사업 모델은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다. 해외에서도 한국의 독특한 라이선스·브랜딩 전략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스포츠리그와 방송, 카메라, 이종격투기까지 패션으로 만들어 내는 ‘K-브랜딩’이라는 독특한 경쟁력이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더 주목할 점은 국내에서 만들어 낸 사업 모델이 다시 해외로 수출되고 있다는 것이다.

 

F&F는 'MLB'의 중국, 홍콩, 마카오, 대만, 태국 등 아시아 주요 국가의 사업권을 확보해 해외 사업을 키운 데 이어, 올해는 '디스커버리 익스페디션'의 글로벌 상표권과 관련 지식재산권(IP)을 인수했다. 한국에서 키운 라이선스 브랜드의 글로벌 IP를 직접 확보하는 단계까지 발전한 것이다.

 

더네이쳐홀딩스 역시 '내셔널지오그래픽 어패럴'의 해외 사업권을 확보해 아시아를 중심으로 사업을 확대하고 있으며, 하이라이트브랜즈도 그레이트 차이나에 이어 일본과 동남아시아로 '코닥어패럴'의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다.

 

과거 한국 기업들이 해외 유명 브랜드를 들여와 판매하는 '라이선시'였다면 이제는 글로벌 IP를 패션으로 재해석하고, 국내에서 검증한 사업 모델을 다시 해외로 수출하는 단계​로 역할이 달라지고 있다.

 

한국 패션 기업들이 비패션 IP를 상업성 높은 패션 브랜드로 만들어 내는 개척자 역할을 하면서 글로벌 기업들도 한국을 새로운 '브랜드 메이커'로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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