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태용의 ‘패션 디자이너의 세계’
오늘날 패션 산업은 겉으로는 화려하고 활기가 넘쳐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본질적 가치의 재정의라는 중요한 질문이 자리하고 있다. “브랜드는 제품으로 말해야 하는가, 아니면 이미지로 말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다. 특히 최근 몇 년간 패션 브랜드들이 디자인 개발이나 품질 개선보다 마케팅 역량 강화에 훨씬 많은 리소스를 투자하고 있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현대 패션 시장을 주도하는 것은 더 이상 장인정신이나 독창적인 디자인이 아니다. 글로벌 톱 브랜드들조차 제품 개발에 대한 투자는 줄이고, SNS 채널 운영, 인플루언서 마케팅, 브랜디드 콘텐츠 제작, 협업 캠페인 등 마케팅 영역에 자원을 집중하는 추세다.
실제 주요 패션 기업들의 인력 구성도 마케터와 콘텐츠 기획자, 커뮤니케이션 전문가가 개발자나 디자이너보다 더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경우가 많다. 기업 내부의 구조조차 ‘기술’이 아닌 ‘이미지’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는 셈이다.
이는 소비자들의 구매 심리 변화와도 맞물려 있다. 이제 소비자들은 소재나 마감 품질, 실루엣 완성도보다도 브랜드가 내세우는 ‘세계관‘, ‘무드’, ‘SNS상 존재감’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 수많은 브랜드 중에서 단 3초 만에 시선을 사로잡고 클릭을 유도하며, 감성적 몰입을 유도하는 브랜드가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는 시대다. 다시 말해, 제품의 완성도보다 ‘브랜드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가 더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
그렇다면 마케팅에 집중하는 것이 정말 잘못된 전략일까. 단언하기 어렵다. 현대 사회는 정보 과잉의 시대이며, 소비자는 무수한 선택지 속에서 브랜드를 기억하기 위한 단서를 필요로 한다. 마케팅은 그 단서를 제공하고, 브랜드가 존재하는 이유와 가치를 소비자에게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수단이다. 즉, 마케팅은 단지 ‘포장’이 아니라 브랜드 정체성을 구축하는 중요한 기능이기도 하다.
문제는 그 ‘비중’에 있다. 마케팅이 중심이 되고, 제품 개발은 부수적인 역할로 밀려날 때 발생하는 위험은 실질적이다. 콘텐츠는 소비자의 기대를 끌어올리지만, 그에 걸맞는 품질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브랜드는 신뢰를 잃게 된다. 오늘날 빠른 성장세를 보이다가도 금세 소비자 외면 속에 사라지는 패션 브랜드들이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보여주는 것’과 ‘제공하는 것’의 간극이 커질수록 소비자는 피로감을 느끼며 등을 돌린다.
패션의 본질은 여전히 ‘제품’에 있다. 아무리 마케팅이 뛰어나도, 결국 소비자가 입었을 때의 착용감, 세탁 후의 내구성, 계절을 견디는 소재감 같은 ‘디테일’이 브랜드의 신뢰도를 결정짓는다. 특히 브랜드가 장기적으로 생존하고, 충성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단발성 캠페인보다 제품 그 자체의 힘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앞으로의 패션 산업은 마케팅과 개발의 균형이라는 난제를 풀어야 한다. 지금은 마케팅이 중심축으로 보일 수 있지만, 진정한 지속가능성은 개발력, 즉 ‘내실’에서 출발한다. 브랜드는 스토리도 중요하지만, 결국 그 이야기를 담는 그릇이 ‘좋은 제품’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브랜드가 마케팅으로 성장할 수는 있어도, 유지되기 위해서는 제품의 완성도가 필요하다. 과도한 마케팅 편중은 장기적으로 브랜드 신뢰를 약화시키고, 소비자와의 관계를 피상적으로 만들 수 있다. 결국 소비자는 이미지가 아닌 ‘경험’을 기억한다. 그리고 그 경험의 핵심은 여전히 ‘제품’이라는 점에서, 지금이야말로 패션 산업 전반이 다시 ‘디자인과 퀄리티’에 대해 진지하게 투자해야 할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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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태용 비욘드클로젯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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