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찌라] 젠지가 리바이스를 다시 찾는 이유

발행 2025년 10월 29일

어패럴뉴스 , appnews@apparelnews.co.kr

이찌라의 ‘기업 읽어드립니다’

 

리바이스

 

골드러시 시대 노동자들의 작업복에서 출발한 리바이스는 제2차 세계대전과 베이비붐 세대 덕분에 미국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성장했고, 데님 시장은 엄청난 호황을 누렸다. 1950년대 포크댄스, 1960년대 음악 페스티벌, 1970년대 시위 현장에서 젊은이들의 일상복이었다.

 

리바이스의 창립자인 리바이 스트라우스는 1902년 73세의 나이로 가족들 곁에서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아내와 자식이 없던 그는 누이의 조카들을 경영에 참여시켰고, 사업과 재산 역시 네 명의 조카에게 물려주었다. 생전에는 고아원, 이민자 지원단체, 장학금 등 다양한 분야에 수많은 기부를 해서 ‘서부의 자선가’로 불렸다.

 

3세대에 이르러 리바이스는 또 한 번 전환점을 맞는다. 조카의 딸 엘리스와 결혼한 월터 하스가 경영을 맡으며 회사를 한 단계 더 도약시킨 것이다. 윌터 하스는 1928년 어려운 상황에서 경영을 맡아 곧바로 수익성을 회복시키고, 사업 구조를 도매업에서 제조와 유통 중심으로 바꿨다. 이후 리바이스는 하스 가문의 소유 아래 성장했고, 지금도 75%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하스는 1971년 리바이스를 상장시켰고, 상장 이후 매년 매출이 30~40%씩 성장하면서 1980년대에 정점을 찍는다. 그러나 80년대 들어 캘빈클라인과 조다쉬 같은 디자이너 청바지가 섹시함을 앞세워 시장을 잠식했고, 리바이스는 패션 트렌드를 따라잡지 못했다. 결국 리바이스 가문은 16억 달러의 부채를 떠안고 회사를 상장 폐지한다. 게다가 미국의 공장 11곳을 닫고 직원 3,600명을 해고했다.

 

1990년대는 더 혹독했다. 리바이스는 배기진, 로우라이즈 열풍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J.C.페니나 갭에서 판매된 저가 브랜드, 그리고 7 포 올 맨카인드, 디젤, 트루 릴리전 같은 프리미엄 브랜드에 밀려 1997년부터 2002년까지 매출이 매년 하락했다. 2011년 리바이스는 파산 직전에 몰린다. 부채는 20억 달러로 부채비율이 5:1에 달했고, 신용 등급은 투자 부적격 일보직전이었다. 무엇보다 리바이스는 더 이상 젊음의 상징이 아니었다.

 

리바이스는 위기를 구원할 투수로 칩 버그를 영입한다. 28년간 프록터앤갬블(P&G)에서 근무하며 질레트를 인수하고 올드스파이스를 부활시키는 등 브랜드 재기의 전문가였다. 칩 버그는 임원들에게 일일이 질문을 던지며 어디서 돈을 벌고, 어디서 잃는지, 근본 문제는 무엇인지 철저히 분석했다. 15번째 면접 후 칩 버그는 리바이스에는 ‘전략도 조직 정렬도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11명 임원진 중 9명을 교체하면서 대대적 인사 쇄신에 나섰다.

 

칩은 리바이스를 다시 ‘문화의 중심’으로 되돌리기 위한 전략을 세웠다. 과거의 리바이스는 대기업 최초로 동성 파트너 복지 제도를 도입할 만큼 LGBTQ 커뮤니티를 적극적으로 지지했지만, 1990년대 초 이후 사회적 이슈에 침묵했다. 그런데 2016년, 한 고객이 매장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다 실수로 방아쇠를 당겨 자신의 발을 쏘는 사고가 발생했다. 리바이스는 이를 계기로 총기 규제를 옹호하는 캠페인에 적극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총기 폭력 방지를 위한 펀드를 설립하고, 관련 법안 통과를 위해 로비 활동을 벌였다.

 

한편, 고객들이 빈티지 리바이스를 더 많이 찾는 것을 적극 활용해서 ‘리바이스 세컨드핸드(Levi’s SecondHand)’ 플랫폼을 시작했다. 친환경 정책도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청바지를 한 벌 워싱하는데 30~60ℓ 사용했던 물을, 제작 공법 개선으로 96%까지 줄였다. 또한 세계 최초 성 중립 편집매장인 '플루이드 프로젝트'에는 미니 청 스커트를 입은 남성을 모델로 등장시켰다. 팬데믹으로 매장 문을 닫은 동안에는 매일 오후 5시 1분, 아티스트 집에서 라이브스트림으로 501 콘서트를 진행했다. 리바이스는 MZ세대가 원하는 것을 이해하고 소통하면서 자기다움을 찾아 나갔다.

 

이런 노력의 결과 리바이스의 매출은 2024년 63억 달러로 칩 버그가 재임한 13년간 54% 성장한다. 2019년에는 다시 상장에 성공했다. 회사를 정상궤도에 올려놓은 칩 버그는 2024년 1월, 리바이스를 떠났고, 미셸 가스가 뒤를 이었다.

 

지금은 어느 브랜드나 청바지를 만들고, 리바이스는 더 이상 청바지의 유일한 아이콘은 아니다. 하지만 그동안 쌓아온 헤리티지가 무엇인지 알아차린 리바이스는 빈티지에 머무는 대신 시대 정신이 되는 길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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