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진택] 60~90년대 패션 혁명을 이끈 ‘섬유 혁명’

발행 2025년 07월 28일

어패럴뉴스 , appnews@apparelnews.co.kr

오진택의 ‘섬유의 민족’

 

광부와 농부들의 작업복이던 청바지

 

60~90년대 인류사에 일어난 패션 혁명은 사실 섬유 혁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시기 패션은 단순한 옷 이상의 것이었다. 사회를 바꾸는 외침이었고, 세대의 정신을 드러내는 ‘비주얼 선언’이었다. 우리는 종종 디자이너나 유명 인물, 혹은 문화적 분위기를 중심으로 그 시기를 설명하지만, 정작 결정적 영향을 끼친 ‘진짜 주인공’은 따로 있다. 바로 원단, 즉 ‘섬유’다.

 

기술이 만든 직물, 그리고 직물이 만든 문화. 60~90년대의 패션 혁명은 실은 ‘새로운 소재의 탄생과 보급’이 만들어낸 산물이었다. 각 시대를 대표한 옷 뒤에는 언제나 그를 가능하게 만든 새로운 원단의 탄생이 숨어 있다. 그중 몇 가지는 심지어 정치와 경제를 움직이기도 했다.

 

1960년대 과학이 낳은 나일론과 폴리에스터

 

우주 경쟁이 한창이던 60년대, 과학은 사람을 달에 보내는 것 외에도 패션계를 송두리째 흔들어놓았다. 미국 듀폰사(DuPont)가 개발한 나일론과 폴리에스터 같은 합성 섬유는 가볍고, 구김이 없으며, 무엇보다 싸고, 빨리 생산할 수 있었다.

 

이러한 섬유들은 당시 여성 해방 운동과 절묘하게 맞물렸다. 미니스커트, A라인 원피스, 피에르 가르뎅의 미래주의 룩은 모두 이 새로운 소재 덕분에 가능했다. 우주복에서 영감을 받은 메탈릭 소재의 드레스는 여성들이 “나는 이제 불편한 코르셋을 입지 않아도 된다”고 외치게 만든 대표 아이템이었다.

 

더불어 합성 섬유는 세탁이 간편했다. 이는 가사 노동에서 여성을 해방시켰고, 이는 다시 여성의 사회 진출을 촉진했다. 옷 한 벌이 세상을 바꾸었다는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니다.

 

1970년대 '면화의 반격', 그리고 데님

 

반문화의 시대, 히피들은 화학 섬유를 ‘체제의 산물’로 보며 저항했다. 그들은 자연주의와 공동체, 평화를 추구하며 리넨, 면, 마 등 천연 섬유를 애용했다. 흙냄새 나는 패션은 단순히 트렌드가 아니라, 철학이었다.

 

그리고 이 시기, 가장 혁명적인 섬유 아이템이 등장한다. 바로 데님. 원래 광부와 농부들의 작업복이던 청바지는 70년대에 이르러 청춘의 상징으로 거듭난다. 리바이스501은 반항의 아이콘이 되었고, 지미 헨드릭스나 제니스 조플린 같은 록 스타들은 찢어진 데님에 꽃무늬 패치를 붙이고 무대를 휘저었다.

 

재미있는 사실 하나. 70년대에 들어 미국 농무부는 ‘면화 산업 보호 정책’을 펼치며 화학 섬유에 밀려난 면화의 부활을 추진했다. 정부가 ‘섬유 마케팅’을 한 셈이다. ‘천연 섬유가 더 윤리적’이라는 관념의 시작이었다.

 

1980년대 스판덱스, 그리고 몸의 해방

 

1980년대에는 에어로빅과 피트니스 붐이 일면서 ‘몸을 드러내는 옷’이 주류로 떠오른다. 이 시기를 대표하는 원단은 단연코 ‘스판덱스’다. 고무처럼 늘어나는 이 신소재는 운동복, 레깅스, 바디수트 등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마돈나와 제인 폰다, 그리고 실비아 크리스텔이 입었던 라텍스 같은 옷들은 ‘섹시함’을 넘어‘ 여성의 주체성’을 상징했다. 보디콘 드레스도 스판덱스의 산물이다. 이때부터 ‘몸매를 드러내는 것’이 권력의 표시가 되었고, 이는 나중에 슈퍼모델 시대와 연결된다.

 

특히 일본과 이탈리아에서 개발된 스판 원단은 좋은 품질과 세련된 감성으로 고급 디자이너 브랜드에서도 각광을 받기 시작했고, 기능성이 곧 미학이 되는 계기가 되었다.

 

1990년대 스트리트 패션과 혼합 섬유

 

90년대는 장르 융합의 시대였다. 그만큼 원단도 다양화됐다. 면+폴리에스터, 울+나일론, 스판덱스+면 등 ‘믹스 섬유’가 본격적으로 패션의 전면에 등장하는데, 힙합과 스케이트보드 문화, 그리고 나이키나 아디다스의 스포츠웨어가 스트리트 패션으로 흡수되면서 기능성과 스타일을 동시에 잡아야 했기 때문이다.

 

이 시대를 상징하는 섬유는 '고어텍스(GORE-TEX)'다. 방수성과 투습성을 모두 갖춘 이 소재는 원래 군대용이었지만, 아웃도어 붐과 함께 스트리트로 흘러 들어왔다. 노스페이스, 파타고니아, 그리고 슈프림까지 소재가 곧 신분이 되던 시절이다.

또 90년대는 '리사이클 섬유'라는 개념이 처음 도입된 시기이기도 하다. 지속 가능성과 환경에 대한 고민이 원단 선택에까지 반영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는 흔히 패션을 디자이너의 아이디어나 유행의 흐름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언제나 ‘기술과 소재의 진화’가 있었다. 패션은 말하자면 섬유공학의 캣 워크다. 섬유가 변하면 옷이 변하고, 옷이 변하면 사람의 움직임이 달라진다. 그리고 그 변화는 곧 사회를 바꾼다.

 

60~90년대의 패션은 단순한 스타일이 아니라, 원단이 벌인 혁명의 기록이다. 시대를 상징하는 그 수많은 룩들은, 사실 '실 한 가닥'에서 시작되었다.

 

오진택 에이엠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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