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진택의 ‘섬유의 민족’
‘리넨’과 고대 이집트의 신분제도
오늘날 리넨은 여름철 시원한 고급 섬유로 여겨지지만, 그 시작은 수천 년 전 나일강 유역에서 비롯되었다. 리넨의 원료인 아마섬유(flax)는 고대 이집트에서 기원전 5000년 무렵부터 재배되었고, ‘직조’라는 기술을 통해 하얗고 정교한 천으로 탈바꿈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리넨이 단순한 천이 아니라 ‘신분의 상징’이었다는 점이다. 파라오와 귀족은 투명에 가까울 정도로 가늘게 짜인 리넨 옷을 입었고, 사후에도 미라를 감싸는 천으로 사용되었다. 반면 일반 백성은 거칠고 두꺼운 리넨을 입었다. 이 시대의 천은 곧 계급의 서열을 드러내는 방식이었던 것이다.
심지어 당시에는 리넨의 ‘실 두께’가 얼마나 가는지가 부의 척도로 여겨졌다. 즉, 천이 곧 돈이었고, 실이 곧 권력이었던 시대다. 지금 우리가 입는 얇고 고운 리넨 셔츠는 당시에는 귀족의 특권이었고, 현대에 민주화된 셈이다.
실크로드의 진짜 주인공 ‘비단’
직조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소재가 바로 실크, 즉 ‘비단’이다. 하지만 비단의 진짜 힘은 그 자체보다, 그것이 만들어낸 글로벌 네트워크에 있다.
중국에서는 기원전 2700년경부터 누에고치를 활용한 실크 직조가 이루어졌으며, 이는 수천 년 동안 국가 차원에서 극비 기술로 관리되었다. 실크 제작법을 외부에 유출하면 ‘사형’에 처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다. 이는 실크가 단순한 직물 그 이상의 정치적·경제적 자산이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실크는 마침내 세계를 움직인다. 기원전 2세기, 한나라 장건의 서역 탐험을 계기로 비단길(Silk Road)이 열리며, 중국의 실크가 유럽과 중동, 인도까지 확산된다. 이 길은 단순한 무역로가 아니라, 직조 기술이 세계를 연결한 최초의 글로벌 네트워크였다.
로마 시대 귀족들은 실크를 너무 사랑했다. 그것이 지나쳐 너무 많은 돈을 들여 사들이자 “국부가 모두 동쪽(중국)으로 흘러간다”는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다. 비단 한 필이 국정을 흔든 셈이다.
‘면화’에서 시작된 산업혁명
직조의 진짜 전환점은 바로 산업혁명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있던 소재는 다름 아닌 면화(cotton)였다. 18세기 영국에서는 인도에서 수입한 면화 직물이 선풍적 인기를 끌었고, 이에 대응해 본격적인 기계식 방적 및 직조 기술이 개발된다.
그 대표적인 것이 제임스 하그리브스의 ‘스피닝 제니’, 그리고 에드먼드 카트라이트의‘기계식 베틀’이다. 이 발명품들은 면화의 생산 속도를 폭발적으로 끌어올렸고, 인류는 처음으로 ‘대량 생산된 옷’을 경험하게 된다.
하지만 면화의 역사는 단순한 기술혁신으로 끝나지 않는다. 노예제도와 식민주의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미국 남부의 면화 플랜테이션은 대규모 흑인 노예 노동을 기반으로 운영되었고, 그 면화는 영국 산업 도시의 방직 공장에서 값싼 노동력으로 재가공되었다.
즉, 우리가 입는 가장 흔한 면 티셔츠는 그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기계·노동·제국주의가 얽힌 복잡한 세계사의 일부다.
우리가 매일 입는 옷은 단순히 취향의 표현이나 계절의 필요만이 아니다. 그것은 인류 문명의 발자취이자, 인간이 어떻게 자원을 이용하고, 권력을 세우고, 문화를 전파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직조의 시작은 실을 엮는 기술이었지만, 그 파급력은 실로 방대했다. 리넨이 귀족의 권위를, 비단이 동서 문명의 연결을, 면화가 산업과 자본의 시스템을 상징했듯 실과 천은 늘 인류의 패턴과 문양을 함께 직조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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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진택 에이엠랩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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