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진택의 ‘섬유의 민족’
우리는 일상에서 옷이나 생활용품을 이야기할 때 자연스럽게 ‘천’이라는 단어를 쓴다. “이불 천이 부드럽다”, “커튼 천이 두껍다” 같은 말은 누구나 쉽게 이해한다. 그런데 의류 매장이나 원단 상가에 가보면 같은 직물을 두고, “이 원단은 어떤가요?”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인테리어 숍에서는 ‘패브릭 소품’이라는 표현이 자연스럽게 붙는다. 얼핏 보면 모두 같은 것을 가리키는 듯한 이 세 단어가 사실은 맥락과 뉘앙스가 다르다. 용어를 이해하지 못하면, 정확한 의미 전달이 어려워지고, 반대로 제대로 구분할 줄 알면 생활과 산업 전반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
‘천’은 한국에서 직물을 칭하는 단어로 가장 오랫동안 쓰여 온 생활 언어다. 조선시대 장터에서도 비단 천, 무명 천이라고 불렀고, 오늘날에도 시장에 가면 여전히 천 가게라는 간판을 쉽게 볼 수 있다. ‘천’이라는 단어에는 생활과 밀착된 따뜻한 뉘앙스가 베어 있다. 하지만 동시에 범위가 너무 넓어 구체적인 소재나 가공 방식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예를 들어 ‘면 천’이라고 하면 대체로 면 직물을 뜻하지만, 두께나 짜임, 가공 방식은 알 수 없다. 그래서 전문적인 대화에서는 모호하게 들릴 수 있다.
‘원단’은 섬유 산업이 발달하면서 산업 현장에서 자리 잡은 용어다. 글자 그대로 ‘원재료가 되는 직물의 단위’라는 뜻이다. 실을 뽑아 짜거나 편직한 후, 아직 최종 제품으로 가공되기 전 단계의 직물을 지칭한다. 의류 업체에서 “이번 시즌 원단을 발주했다”라고 말하는 것은 곧 완제품 생산을 위한 재료를 선택하고 주문했다는 뜻이다.
때문에 ‘원단’이라는 말은 공장, 디자이너, 바이어 등 전문 영역에서 훨씬 더 자주 쓰인다. 특히 수출입 거래에서는 원단의 규격, 혼용률, 기능성을 명확히 표기해야 하므로 ‘천’이라는 말 대신 ‘원단’이라는 용어가 필수적이다. 업계 사람들에게는 신뢰와 정확성을 주는 언어다.
반면 ‘패브릭(fabric)’은 국제적이고 감각적인 이미지를 갖는다. 영어에서 ‘fabric’은 옷감·직물을 뜻하지만, 한국에서는 인테리어와 라이프스타일 영역에서 세련된 뉘앙스로 사용된다. 예를 들어 ‘패브릭 소품’이라고 하면 단순히 직물 재질의 물건이 아니라, 공간 분위기를 바꾸는 감각적인 아이템을 떠올리게 한다. 브랜드 입장에서도 ‘천 제품’보다는 ‘패브릭 컬렉션’이라고 홍보하는 편이 훨씬 고급스럽고 글로벌한 느낌을 준다.
이처럼 각각의 단어의 차이는 단순한 언어 문제가 아닌, 소비 경험에 직접 연결된다. 매장에서 소비자가 “천이 마음에 드네요”라고 말하면 점원은 대체로 친근하게 반응할 것이다. 그러나 “이 원단은 관리가 쉽나요?”라고 물으면, 소재 특성과 세탁 법, 내구성 같은 구체적인 정보를 얻을 가능성이 크다. 또 “이 패브릭 소재가 집 분위기에 잘 어울리네요”라고 말하면, 점원은 인테리어 조언까지 곁들일 수 있다. 같은 물건을 보고도 어떤 단어를 쓰느냐에 따라 대화의 깊이와 방향이 달라지는 것이다.
최근 패션 산업의 화두는 지속가능성이다. 리사이클 원단, 업사이클 패브릭, 친환경 섬유 같은 용어가 쏟아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원단’은 소재 혁신의 기술적 측면을 강조할 때, ‘패브릭’은 지속가능한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할 때 자주 쓰인다. 소비자가‘리사이클 패브릭 제품’이라고 들었을 때는 단순히 재활용된 천이라는 의미를 넘어, 환경과 감각적 가치를 함께 떠올리게 된다. 앞으로 이 단어의 쓰임은 더욱 확장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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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진택 에이엠랩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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