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억] 음식, 형식의 미학
사라진 기능의 자리에서 다시 시작되는 이야기

발행 2025년 11월 26일

어패럴뉴스 , appnews@apparelnews.co.kr

김동억의 ‘디 오리진(The Origin)’ ②

 

 

음식은 원래 생존을 위한 도구였다. 배를 채우고, 에너지를 얻고, 하루를 버티기 위한 행위.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 단순한 목적은 기술과 산업에 의해 대체되었다.

 

냉장고와 배달앱, AI 추천 메뉴가 우리의 식사를 관리하는 오늘날, 우리는 굳이 음식을 직접 만들지 않아도 된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손으로 재료를 다듬고, 국물을 끓이고, 순서대로 코스를 즐긴다. 배를 채우는 기능은 사라졌지만, 그 자리에 남은 것은 형식과 정신이다. 음식은 필요의 기술에서 경험의 미학으로 이동한 것이다.

 

주류의 세계에는 이러한 변화의 흔적이 뚜렷하다. 포트와인은 장거리 항해 중 산화를 막기 위해 브랜디를 섞은 ‘보존용 기술’에서 시작했지만, 오늘날에는 진득한 풍미와 질감이 오히려 매력으로 소비된다. IPA 역시 인도까지 맥주를 보내기 위해 홉을 과하게 넣어 쓴맛을 높인 ‘운송 전략’이었지만, 지금은 그 쌉싸름한 풍미가 개성의 상징이 됐다. 버번도 마찬가지다. 원래는 술을 실어 나르기 위한 값싼 목재 통이 이동 중 햇빛과 시간에 의해 우연히 숙성되며 ‘오크 풍미’가 생겼고, 그 부작용이 오히려 버번의 정체성이 되었다. 이들은 모두 기능으로 출발했지만, 시대가 흐르며 기능이 사라지고, 그 빈자리에 해석과 취향이 남았다.

 

프렌치 코스 요리 또한 처음부터 미식의 상징이었던 것은 아니다. 18세기 유럽 귀족 사회에서 코스 시스템은 위생과 질서를 위한 발명이었다. 한꺼번에 모든 음식을 올려놓던 혼란스러운 식사 방식에서 벗어나, 일정한 간격과 온도로 음식을 제공하기 위한 효율적 구조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코스 요리는 기능의 총합이 아니라, 산미와 감칠맛이 교차하는 흐름, 리듬과 해석의 언어다. 살라미 역시 냉장 기술이 없던 시절 장기 보존을 위해 소금과 지방, 향신료로 고기를 절이던 기술에서 출발했지만, 오늘날에는 숙성의 깊은 풍미 자체가 목적이 되었다. 오니기리도 이동성과 편의성을 위해 탄생한 기능적 음식이었지만, 지금은 재료와 조합을 통해 기분과 성향을 담아내는 작은 ‘포맷’이 되었다. 기능이 걷힌 자리에서, 음식은 하나의 경험을 설계하는 미학으로 남는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한 다양한 주류부터 일상적 음식들까지 모두 기능에서 출발했지만, 오늘날 그 안에는 질서, 리듬, 선택과 해석이라는 경험의 층이 남아 있다. 음식은 더 이상 생존의 기술이 아니라, 인간이 세상을 이해하고 경험하는 방식을 탐구하는 매개가 된다.

 

패션 역시 마찬가지다. 옷이 단순히 몸을 보호하는 기능에서 시작했지만, 오늘날의 패션은 소재와 색, 형태와 디테일을 배합하고 해석하며 리듬을 만드는 경험이 된다. 음식을 통해 조합과 순서, 흐름을 배우듯, 스타일을 구성하는 과정 또한 선택과 균형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낸다. 그 과정 속에서 패션은 단순한 외형을 넘어, ‘조합과 경험의 예술’로 확장된다.

 

“기능은 사라져도, 정신은 남는다.”

 

그 증거가 바로 오늘 우리가 먹고, 경험하고, 옷을 입는 모든 순간 안에 살아 있다.

 

김동억 다이나핏 커뮤니케이션 부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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