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근의 ‘디지로그 2.0’
“디지로그(Digilog)는 아날로그 사회에서 디지털로 이행하는 과도기, 혹은 디지털 기반과 아날로그 정서가 융합하는 시대의 흐름을 나타내는 용어이다. 한때 ‘혁명’으로까지 불리며 떠들썩하게 등장했던 디지털 기술은 그 부작용과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다시 아날로그 감성을 불러들이고 있다.”
놀랍다. 지금으로부터 거의 20년 전에 쓰여진 문장과 관점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정확하고 통찰력 있는 혜안이 아닌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문학평론가, 소설가, 교육자이자 초대 문화부 장관까지 역임했던 故 이어령 선생이 2006년에 저술한 <디지로그>에 나오는 한 부분이다.
IT 정보기술은 미국이 먼저 시작했으나 디지털 강국은 한국이 먼저 될 것임을 설파했던 그의 예견이 20년이 지난 지금 현실화되었다. 국가적 IT 기술 인프라, 빨리 빨리 편의성 추구, 최신 기술과 트렌드에 민감한 사회적 분위기와 국민성이 뒷받침되어, 한국은 빠른 속도로 IT 강국이 되어가고 있다.
글로벌 비즈니스 데이터 플랫폼인 ‘Statista’의 발표에 따르면, 한국의 2024년 IT 서비스 시장 예상 수익 규모는 33.67 billion USD(한화 약 46조원)이다. 국가 총 면적이 한국보다 32.8배나 큰 인도의 2024년 IT 서비스 시장 예상 수익 규모는 약 26.73 billion USD(한화 약 36조 원)로 한국이 오히려 26%나 큰 규모를 보인다. 향후 5년간 한국의 연평균 성장률(CAGR)은 5.62%, 2029년 시장 규모는 44.26 billion USD(한화 약 60조 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故 이어령 선생이 처음 주창한 디지로그의 시대적 정신과 예견을 '디지로그 1.0'이라고 한다면, 필자는 약 20년이 지난 지금의 시대를 '디지로그 2.0'이라고 명명하고자 한다.
생성 AI로 인해 모든 산업과 비즈니스에서 디지털 발전이 무한 속도로 빨라지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어? 진짜? 하며 의구심을 갖다가 이제는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약 1주일 전(5월 14일) 챗GPT 4o(포오)의 역대급 발표에 많은 이들이 입틀막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필자 역시 영어로 된 소개 영상을 보며 소름 끼치는 경험을 했다. 챗GPT 4o의 Voice 기능은 물 흐르듯 대화하며 농담까지 하는 진짜 사람 같은 AI의 수준을 보여주었다.
마치 10년 전 뛰어난 상상력으로 많은 IT 전문가들을 열광에 빠뜨렸던 영화 의 AI 여주인공 '사만다'가 현실이 되어 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OpenAI는 생성 AI 버전 네 번째 만에 LLM에서 멀티모달로 전환하며 디지털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 올렸다. 어릴 때 보던 공상과학영화가 현실이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신기함과 묘한 공포감이 피부에 와닿는 순간이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사람들은 기술이 대체할 수 없는 영역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핸드폰의 성능이 빠르다거나 디자인이 예쁘다는 것만으로는 살아남기 힘든 세상, 놀라운 AI 기술을 누구나 쉽게 활용할 수 있는 세상이다.
디지털 기술의 범용적 보급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이목은 어떻게 차별화할 것인가로 향한다. 특히 디지털의 대척점에 있는 그 무엇인가를 통해서 말이다. 바로 ‘아날로그’다.
패션으로 돌아와 보자. 패션 비즈니스에서 디지로그는 무엇을 의미할까? 필자는 단순히 전자정보시대의 것을 디지털, 그 이전의 옛날 것을 아날로그로 나누는 성의 없는 이분법의 개념으로 디지로그를 논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다고 해서 숫자 0과 1을 들먹이며 디지털의 모든 것은 0과 1로 시작하며 귀결된다는 등의 공학 개념으로 접근하고 싶지도 않다.
필자는 국내 패션 대기업에서 20년 넘게 일하면서 몸과 피부로 직접 경험한 다양한 직무와 패션 실무를 기준으로 이야기하려고 한다. 다음 칼럼에서는 업계 사례를 중심으로 ‘디지로그 2.0’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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