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광] “어제의 태양은 오늘의 빨래를 말리지 않는다”

발행 2024년 08월 08일

어패럴뉴스 , appnews@apparelnews.co.kr

이재광의 ‘인생이 패션’

 

LVMH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이키는 가격을 초월하여 평가받을 수 있는 브랜드로 인식되어 왔다. 예를 들어, 나이키의 슈즈 가격대가 5~20만 원대라고 한다면, 에르메스, 루이비통, 샤넬 등과 비교해 중저가로 치부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리셀가가 높게 책정되는 모델들은 수천만 원 이상을 호가해, 나이키를 가격으로 분류하는 방법은 유효하지 않았다. 나이키는 동시대 스포츠, 스트리트, 서브컬처 등을 아우르는, 우리가 향유하는 문화 전반을 대표하는 브랜드였다.

 

10대 시절 나는 에어 조던을 단 한 켤레도 신어보지 못한 채 학창 시절을 마무리했다. 20대가 되고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 수 있게 됐을 때, 에어조던11을 비롯해 당대에 인기 있던 모델들이 레트로라는 이름으로 재출시됐고, 나는 시리즈들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 그런데 2010년대에도 해당 모델들이 끝도 없이 나오는 걸 보며, 차츰 그 매력도가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최근 국내 편집숍들의 바잉 방향을 보거나, 해외 출장에서 현지인들이 신고 다니는 브랜드들을 살펴보면 나이키는 물론 아디다스 등 전통적인 강자였던 브랜드들을 찾아보기가 어려워졌다. 호카, 온 러닝, 살로몬, 더 나아가 트레일 러닝 전문 브랜드들(노다, 노말 등)를 더 자주 보게 된다.

 

이같은 라이징 브랜드들은 더 나은 기술력을 가지고 있을까. 나이키의 유구한 역사를 감안할 때 더 높은 레벨의 기술력을 추측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왜 나이키는 외면을 받기 시작했을까.

 

전략적인 이유로는 DTC로의 집중, 경영진의 방향성 정립 실패 등을 들 수 있겠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나이키 내부의 “우리는 나이키니까 뭘 해도 소비자들이 찾아줄 거야”하는 안일함에 있을 것 같다. 나이키가 레트로를 이용해 천천히 컬렉션을 출시하는 동안, 세계는 다각화된 레저 액티비티로 진화했고, 이에 발맞추어 신규 브랜드들이 무섭게 치고 올라왔다. 어제의 영광이 오늘과 내일의 안정을 담보할 수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국내 패션 대기업들의 실적과 내부 분위기 역시 심상치 않아 보인다. 2023년 실적을 보더라도, 여러 기업들이 적자 전환, 적자 유지의 실적을, 그리고 탄탄한 대기업들 역시 3%대의 영업 이익률을 기록했다. 고물가 시대를 감안할 때 이런 실적은 현상 유지조차 어려운 상태라 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들의 의견을 종합 해보면, 결국은 ‘안정적인 캐시카우의 몰락’과 ‘미래 먹거리의 부재’로 귀결된다.

 

캐시카우가 흔들린다면, 빠르게 라이징하는 사업영역을 키워 포트폴리오를 유지해야 한다. 하지만 어지간한 글로벌 브랜드들은 대부분 한국 시장에 진출해 있고, 이들 중 캐시카우의 사분면으로 넘어갈 수 있는 브랜드는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온라인 기반으로 키워 나갈 수 있는 MZ타겟의 브랜드들 역시 성공 문법을 못 찾은 채 표류하고 있다. 무신사의 성장, 신진 브랜드의 성장을 보고 있노라면, 전통적인 대기업이 잘할 수 있는 영역이 예전보다 축소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생각해 보면,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대기업을 선호하는 이유 중 하나는 안정감 때문이다. 안정지향형 인재들의 모임이 대기업이라면, 현재 패션 시장의 빠른 변화에 대한 대응이 더딘 것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전 세계 패션 기업의 선두주자인 LVMH는 어떨까. LVMH의 성공 요인 첫 번째는 어제의 영광에 기대어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트렌드를 발 빠르게 만들거나 쫓아가는 속도감, 두 번째는 각 브랜드가 독자적으로 움직이는, 일종의 작은 브랜드 기업화, 마지막으로 오너의 강력한 통솔력으로 요약된다.

 

서양 속담에 “어제의 태양은 오늘의 빨래를 말리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고달픈 일이지만 패션업계에 몸담고 있는 우리는 잠시도 멈출 수가 없다. 멈춤은 곧 뒤처짐일 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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