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광의 ‘인생이 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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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홈플러스 |
올봄, 홈플러스가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다는 소식은 패션·유통업계 종사자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대형 유통사를 하나의 기반 인프라처럼 여겨온 관행 속에서, 유통사의 부실이 협력 생태계 전체에 어떤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지를 보여준 사건이었다. 이번 사태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것은 납품 거래를 해온 수많은 협력업체다.
회생절차 돌입과 동시에 결제 유예 및 정산 지연이 발생하면서, 현금 흐름이 생명인 중소 협력사들은 자금 유동성 위기에 직면했다. 통상적으로 회생절차는 채무를 일시 동결하고 새로운 구조조정을 위한 시간을 확보하는 제도지만, 그 사이 소규모 공급사와 외주 파트너들은 사업 운영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는다.
홈플러스는 2015년 MBK파트너스에 인수된 이후 핵심 부동산 자산을 매각하고 임대 형태로 전환하는 구조조정을 거쳤다. 단기 수익 회수를 목표로 하는 사모펀드의 전형적인 전략이지만, 이는 결국 고정비 증가와 함께 기업의 장기 경쟁력 약화로 이어졌다. 변화하는 유통 환경에 맞서는 투자와 혁신은 뒷전으로 밀렸고, 결과적으로 홈플러스는 몇 년간 적자를 지속하다 회생절차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 직전 대규모 기업어음을 발행해 단기 자금을 조달한 사실은 도덕적 해이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사회적 신뢰마저 무너뜨렸다.
국내 패션 유통 시장을 살펴보면, 백화점, 온라인 플랫폼, 편집숍 등 다양한 채널이 존재하지만, 상당수는 브랜드가 생산과 재고 부담을 지고, 유통사는 판매와 정산을 담당하는 특약 매입(위수탁) 또는 입점 구조로 운영된다. 이러한 구조는 겉보기에는 리스크 분산처럼 보일 수 있지만, 판매 부진에 따른 현금 유동성 악화 문제는 브랜드와 제조업체에는 여전한 리스크로 남게 된다.
그중에서도 패션 유통 구조에서 가장 위태로운 위치는 브랜드가 아니라 제조업체다. 원부자재, 봉제업체 등 브랜드와 함께 움직이는 수많은 중소 파트너는 오더가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선제적인 생산이나 자원을 투입하지만, 브랜드사, 유통사의 전략 변경이나 수요 감소에 따라 납기 연기, 발주 축소, 대금 지연, 비용 전가를 겪는다. B2B 거래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완제품을 재고로 보유하지 않지만, 그렇기에 보유하고 있는 재고들을 처분하는 방법이나 채널도 극히 한정적일 가능성이 높다.
일련의 사태의 파급효과를 차치하더라도 사모펀드는 수익을 위해 존재하는 주체임은 분명하다. 이 사실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다. 하지만 공공성과 소비자 신뢰를 기반으로 작동하는 유통 산업을 운영할 경우, 단기 수익 외에도 시장과 생태계에 대한 책임이 필요하다. 홈플러스 사태는 한 유통기업의 위기라기보다, 자본의 논리가 사회적 시스템과 충돌할 때 어떤 균열이 발생하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다.
이번 사태의 직접적인 원인은 사모펀드의 단기 수익 중심 전략에 있지만, 협력업체들이 피해를 입게 된 근본적인 배경은 유통업체가 수직적 거래 구조 안에서 상대적 우위를 점해왔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유통사는 손해를 회피하고 수익만을 취하는 구조를 정교하게 만들어왔고, 이는 사모펀드든 대기업이든 운영 주체가 누구든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을 중의 을'로 밀려난 협력업체들이 언제든 피해자가 되는 구조. 우리는 이제 '합법인가'보다 '정당한가'를 물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유통이 권력의 구조가 아닌, 신뢰의 구조로 작동하려면 산업을 지탱하는 수많은 협력자와의 관계부터 다시 짚어야 한다.
"나무는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는다"는 격언처럼, 아무리 의지를 가져도 외부 환경이 거세면 흔들릴 수밖에 없다. 유통이라는 바람이 너무 거세게 불어, 결국 숲 전체를 흔들고 있다면, 이제는 그 바람의 방향과 속도를 돌아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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