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환의 ‘유통 이데아’
나는 20년 이상 유통업에 근무하면서 다른 어떤 사람보다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준 회사에 항상 감사하고 있다.
백화점 MD뿐만 아니라 면세점 MD도 경험했고, 백화점 MD 시절에는 브랜드의 입점과 퇴점을 결정하는 업무뿐만 아니라 상품을 직사입하는 업무, 나아가 브랜드와의 독점계약을 통해 국내 유통하는 업무까지 담당하였다.
아울러 상품의 카테고리도 여성복, 남성복, 명품, 시계와 보석 등 백화점에서 유통되는 대부분 영역을 경험했다. 물론 백화점 매장에서 고객과 직접 만나는 매장 관리자의 경험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좋은 경험을 바탕으로 칼럼도 쓰고, 가끔 강의도 하면서 나름 유통업에 대해 아는 척을 하면서 살고 있지만, 사실 나는 식품에 대해서는 일자무식이다. 물론 업무영역이 패션 부문에 한정되었다고 변명할 수는 있지만, 점점 백화점에서 식품의 역할이 중요해지는 것을 생각하면 식품에 대한 무지는 근무 태만에 가까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백화점 식품의 역할은 어떻게 변해왔고 변하고 있을까.
백화점 식품의 역할변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의 고전적 역할을 이해하는 것이 우선이다. 이를 잘 설명하는 용어가 바로 ‘분수효과’와 ‘샤워효과’이다. 사전적으로 분수효과란 ‘대형 소매점 매장을 찾는 고객의 동선(動線)을 전략적으로 조절함으로써 매출액을 높이는 전략’을 의미한다. 해석해 보자면, 지하에 위치하는 식품 매출이 상층부 의류 매출을 끌어 올리는 구심점 역할을 한다는 뜻이다.
샤워효과란 ‘위층에 소비자들을 유인할 수 있는 상품을 배치해 위층의 고객 집객 효과가 아래층까지 영향을 미쳐 백화점 전체의 매출이 상승하는 효과’를 말한다. 이는 백화점의 최상층에 위치한 식당가의 고객들이 아래의 패션 매장을 방문하도록 유도하는 전략이다.
이 두 가지 용어에서 백화점 식품에 대한 고전적 시각이 엿보이는데, 그것은 바로 ‘식품관과 식당가를 방문하는 고객을 패션 상품을 구매하는 고객과 분리하여 정의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백화점 식품은 고전적인 역할에 아직도 머물러 있을까. 개인적인 의견을 말하자면 고객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은데, 이런저런 사정으로 백화점 MD에는 아직 반영되고 있지는 못한 것 같다. 식료품과 푸드코트는 지하, 식당가는 최상층이라는 공식은 대부분 백화점에서 아직 유효하다. 하지만, 최근 오픈하는 대형 쇼핑몰에서는 이러한 일종의 룰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대형 SPA 옆에 런던 베이글 뮤지엄이 위치하고, 그 앞에는 수입 컨템포러리 브랜드가 입점한다. 트렌디한 F&B라면 식품이 아닌 패션 카테고리로 구분해도 무방하다는 시각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고객은 가장 맛있는 식품을 사기 위해 백화점을 찾는 것이 아니라, 가장 트렌디한 식품 브랜드를 경험하기 위해 백화점을 찾는다. 즉 고객들에게 백화점은 상품을 구매하는 곳에서 트렌디한 경험을 선사하는 곳으로 점점 더 크게 인식되어 가고 있고, 때문에 더 이상 백화점에서 식품과 패션은 경계를 구분하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이는 국내 식(食)문화 고급화의 특성과 무관하지 않다. 독특하게도 ‘식’과 관련된 소비는 식품 자체보다 공간 중심으로 성장했다. 이는 SNS의 활성화와 연관되어 있는데, ‘무농약’, ‘유기농’ 등 럭셔리한 식재료 구매가 아닌, SNS에 트렌디한 식당의 인증샷을 남기는 방식이 럭셔리 소비의 한 축이 되었기 때문이다.
고객들은 백화점을 방문하여, 온라인에서 구매하기 어려운 명품이나 컨템포러리 패션 상품을 구매하고, 인플루언서들에 의해 유명해진 식당에 가서 SNS에 남길 사진을 찍고 싶은데, 그 두 공간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의 고객들이 진짜 원하는 것은 에르메스나 샤넬 매장 옆에 위치한 정식당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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