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준] 서툴지만 순수한, 진심의 힘

발행 2024년 06월 09일

어패럴뉴스 , appnews@apparelnews.co.kr

박현준의 ‘스타트업의 세계’

 

 

본인은 운 좋게도(?) 군대 시절 군악대 생활을 했다. 군악대에 들어갈 수 있게 해준 악기는 다른 대부분의 장병들과 같은 관악기가 아니라 피아노였다.

 

사실 관악기는 난생처음이었고, 특히 자대에 배치받아 배정된 내 악기는 수자폰(Sousaphone)이었다. 군악대 행렬 맨 뒤에서 따라가는, 크기가 엄청 큰 눈부신 나팔이 바로 수자폰이다. 운 좋게도 고참이 훌륭한 전공자여서 군대에서 레슨(?)을 받을 수 있었고, 나중에는 많은 공연을 함께 했다.

 

나의 군악대 동기인 ‘영호’는 다른 군악대 장병과는 다르게, 음악전공자 또는 악기연주자가 아니었다. 영호의 주특기는 태권도였으며, 4단의 유단자였다. 악장님이 난처한 표정의 영호를 보면서, ‘넌 태권도 특기병이다. 우리 부대가 태권도 진급시험에서 떨어지는 경우가 많아서 사범 하라고 뽑은 거야’라고 이야기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하지만 모든 군악대원은 반드시 악기를 배정받아야 하므로, 영호도 악기가 배정되었고, 그 악기는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에도 가장 대중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관악기 중 하나인 색소폰, 그것도 테너색소폰(Tenor Saxophone)이었다.

 

영호는 그렇게 색소폰파트 고참들의 강력한 사랑을 받으며 매일 매일 악기에 매달려 고군분투했지만, 관악기는 정말이지 연주자에 따라 음색이 달라지는 민감한 악기였다. 늘 쟁쟁한 고참들 사이에서 혼나고 지적받으면서, 영호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연습을 반복했다.

 

관악 연주곡 중 올드팝들을 메들리로 연속해서 연주하는 ‘스윙 더 무드(Swing the mood)’라는 곡이 있다. 이 곡은 지금도 관악대들이 자주 연주하는 명곡인데, 우리 군악대도 이 곡을 연주회 레퍼토리 중 하나로 올려두고 맹연습 중이었다. 곡의 중반부를 넘어가면, ‘The Platters’가 부른 유명한 올드팝 명곡 ‘Only You’가 나온다. 그 온리유는 도입부부터 테너색소폰 솔로로 치고 들어가는데, 직전 곡이 빠른 템포의 경쾌한 곡이었기에, 흥겨운 템포의 멜로디가 사라지며, 테너색소폰 독주로 치고 들어오는 “Only You~ Can make this world seem right” 구절이 심금을 울린다.

 

이 독주 부분은 늘 색소폰 파트의 최고참이 맡는다. 확 시선을 끌어당기면서 청중을 집중시키는 독주 부분이지만 멜로디는 정말 단순해서, 이 부분을 연주하는 테너색소폰 최고참은 늘 한껏 멋들어지게 호흡과 음색의 기교를 뽐내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스윙 더 무드’를 연습해야 하는 일정인데, 마침 색소폰 파트의 넘버1, 2, 3가 모두 휴가 등의 일정으로 합주에 참여하지 못했다. 그날 색소폰 파트의 최고참은 내 동기 영호였다. 악장님이 합주를 시작하기 전, ‘Only You~’ 파트 때문에 색소폰 파트를 바라보고 물으셨다. “가능해?” 거기에 영호의 답은 “할 수 있습니다!”였다.

 

그날 영호의 연주는 거의 30년이 지난 지금도 눈에 선하다. “딴딴딴 딴딴딴 딴딴딴 딴!”하고 치고 나가는 영호의 독주는, 결코 크지 않았다. 그렇다고 작지도 않은 적당한 크기의 소리로, 한음 한음 신중하게 파지하면서 소리를 냈다. 호흡이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았고, 음색이 찌그러지지도 않게, 담담하고 선명한 소리로 그 공간을 채웠다. 그 전의 기교 넘치던 고참들의 연주는 지금은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그날 영호의 연주는 여전히 귀에 남아있을 정도로 각인된 기억이다. 영호가 독주 파트를 마치고, 곡 전체의 연주가 끝났을 때 나는 달려가서 하이파이브를 했다.

 

2024년 6월의 나는 지금 어느 창업가의 IR 피칭(투자를 유치하기 위한 프리젠테이션 발표)을 보고 있다. 창업가도 알고, 듣고 있는 투자자도 알지만, 대부분의 창업가는 발표전문가는 아니다. 그래서 당연히 발표를 어려워하는 창업가가 많다.

 

물론 소수의 창업가들은 정말 발표를 잘한다. 하지만, 발표에 있어서 정말로 중요한 것은 수없이 고민하고 들여다본 자신의 회사에 대한 고민과 사실이다. 사실만 있으면 리포트가 된다. 고민만 있으면 감상이 된다. 둘이 조화되면, 과거의 어느 날 영호의 독주처럼, 서툴지만 순수한 발표가 되어 투자자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나는 늘 그런 연주(발표)를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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