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준의 ‘스타트업의 세계’
최근 현직 대학교수님이 창업한 ‘교원창업’ 의료기기 스타트업의 첫 펀딩을 위한 피칭(Pitching)을 들었다. 피칭 전 만나 뵙고, 그 스타트업이 가진 원천기술에 대한 설명과 여러 적용 분야(application)에 대한 설명도 들었다.
그런데 너무 여러 적용 분야가 있어 투자자 시각에서는 오히려 회사가 원하는 최우선 해결 분야를 혼란스러워할 수 있다고 느껴졌다. 대표님(교수님)에게 회사기술의 적용 분야에 대해 우선순위를 두고, 최우선으로 집중해야 할 분야와 중장기적으로 확장해나갈 분야를 구분할 것을 제안 드렸다.
대표님은 그러한 부분에 대해 잘 준비된 기술 파이프라인을 보여주시면서, 최우선적인 적용 분야를 부각시켜 설명하셨고, 나를 포함한 투자자들의 반응도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그 뒤에 나온 마일스톤(향후 일정 목표)에서, 최우선 적용 분야의 첫 매출 발생 연도가 2027년이었고, 2031년의 목표가 IPO(상장)이었다. 그것을 보는 순간 두 가지 감정이 동시에 떠올랐다. 하나는 현직 교수님이신 대표님이 매우 현실적인 가정을 하셨다는 인상이었다.
또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길게 설정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었다. 투자는 기간과 수익률의 함수이기에, 투자건의 투자 기간이 길수록 당연하게도 더 높은 수익률을 기대하게 된다. 결국 더 높은 수익률이라는 것은 적용 분야의 시장규모가 더 커야 가능한 것인데, 목표시장의 현재 시장 크기가 그렇게 크지 않으면서 투자 기간이 길 것으로 예상된다면, 투자 매력은 반감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보며, 불현듯 스타트업의 나이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기업의 ‘본질’을 논의할 때 우리는 기업은 going concern, 즉 ‘영속적’이라고 가정한다. 기업은 ‘영원하다’라는 가정 하에서 기업을 본다는 것이다. 실제로 해외 오래된 기업들은 100년 이상 운영되어온 곳들도 많고, 우리나라 역시 기업경제체제가 시작된 이후 장수기업들이 나오고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창업한 지 몇 년도 안 되어 사라지는 기업들이 훨씬 많은 것이 현실이다.
그러면 스타트업(Start-Up)이라는 표현에서 가리키는 기업의 나이는 몇 살이 적정할까. 우리나라 벤처 및 스타트업 관련 법령에는 ‘창업기업’은 설립된 지 7년 이내, ‘초기창업기업’은 설립된 지 3년 이내의 기업이라고 정하고 있다.
그러면, 본질적인 질문으로 들어가 보자. 글 초기에 내가 피칭을 들었던 스타트업의 설립연도는 2020년이었다. 거의 4년 동안 한 번도 외부 투자를 받지 않고, 창업자이신 교수님 개인 자금 및 공동설립자들의 투자금으로 증자를 해오면서 운영해왔다. 사실 외부 투자 없이 4년여를 기술 개발해 오면서 회사를 유지해왔다는 것 자체는 충분히 존중받아야 하는 부분이지만, 다른 한편의 시각에서는 그 시간에 외부 펀딩을 빨리 받았으면, 그만큼 많은 자금으로 더 빠른 기술고도화 및 상용화가 가능했을 것이기에 잘못된 선택이라고 비판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스타트업 펀딩 시장이 정점에 달했던 2021년의 분위기라면 더더욱 그러한 시각이 우세했을 것이다. 하지만 투자를 받기 전까지 내 돈으로 충분한 수준까지 기술과 회사를 올려놓고, 그 후에 투자를 받는 것이 맞는 것 아닐까. 고지식하고 느리다 비판받을지라도.
2020년 설립 후 2027년 매출 시작이라면 7년이 걸려 첫 매출이 발생하는 것인데, 해당 회사가 ‘교원창업+의료기기’ 스타트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너무 오래 걸린다고 단언하는 것도 좀 애매하다. 물론 매출 발생까지의 기간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는 부분이 없는지 확인해야 할 필요는 있겠지만 말이다.
기업의 나이는 생존의 역사다. 외부투자를 받기 전이든, 받고 나서든 기업의 시간은 똑같이 흐른다. 다만 외부투자를 받게 되면, 그만큼 더 많은 의무와 책임이 따른다는 것이 달라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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