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준의 ‘스타트업의 세계’
요즘 우리 회사는 새로운 블라인드펀드 결성 작업으로 바쁘다. 벤처투자업에서는 펀드의 투자 대상(기업)이 미리 정해져 있는 1개의 기업이면 ‘프로젝트’ 펀드라고 하고, 아직 정해져 있지 않은 ‘다수’의 기업들이면 ‘블라인드’ 펀드라고 한다.
투자할 회사를 미리 살펴볼 수 없는 ‘블라인드’ 펀드는 최소한의 정보만을 가지고 ‘출자자’를 구해야 하기 때문에 모집이 훨씬 더 어렵다. 게다가 최근 벤처 투자업의 위축으로 투자심리까지 얼어붙은 상황이어서, 나는 최근 한 달간 거의 매주 두세 건 이상의 펀드 소개 프리젠테이션을 수행해 왔다. 그런데 이 프리젠테이션이, 마칠 때마다, 놓치고 부족한 것들이 있기 마련이어서 늘상 더 효과적인 방식을 고민하게 된다.
그러다 우연히 최근 화제라는 구글의 ‘노트북 LM’ 모델을 보게 되었다. 그 전에도 AI 모델의 놀라운 요약 능력에 감탄한 적이 몇 번 있었지만, 노트북 LM의 놀라운 점은 요약 능력보다, PDF 파일 등의 정보를 ‘음성 대화 파일’로 생성하는 능력에 있다. 준비 중인 프리젠테이션의 16페이지 분량 PDF 파일을 모델에 넣어주고, ‘음성 대화 파일’을 생성해 달라고 요청하자, 결과는 정말이지 경악스러울 만큼 놀라웠다.
내용은 완벽했고, 내가 놓치고 언급하지 않았던 중요 부분들까지 언급하면서 펀드의 투자 매력을 부각시켰다. 심지어 분량도 내가 목표로 계속 연습해 왔던 ‘발표 시간 8분’보다 20여 초 적은 7분 40초 정도의 분량으로 완벽했다. 일남일녀가 서로 대화를 주고받는 형식으로 구성된 그 음성파일을 들으면서 정말이지 소름이 돋는 것을 느끼던 중, 결정적으로 한 방을 맞고 그로기 상태가 된 것은 맨 마지막 맺음말 부분이었다.
“~~ 이러한 점들을 종합해 보면, 앞으로 벤처 투자산업에서 ~~한 구조와 운용 전략을 가진 펀드들에 대한 시장 수요가, 특히 ~~분야에서 가파르게 상승할 것으로 전망됩니다”라는 맺음말로 마치고 있었는데 문제는 내가 입력한 PDF 파일 어디에도, 이러한 내용은 없었다는 점이다.
즉, 이 ‘결론’ 부분은 ‘요약’이 아니라 ‘추론’에 따른 결론이었던 것이다!
내가 경악한 것은 이 ‘추론에 따른 결론’의 내용이었다. 단순히 “A=B이고, B=C이면A=C이다”와 같은 단순한 추론이 아니라, 이 결론은 정말이지 업계 경험이 많은 숙련된 전문가가 낼 수 있는 수준의 ‘추론’에 의해 도출된 것이었다. 이 지점에서 나는 AI 모델의 추론 능력이 무시무시한 수준까지 발전되었다고 절실히 체감하게 되었고, 동시에 엄청나게 현타(?)가 왔다. ‘한 달 동안 난 뭘 한 건가.’
요약도 추론도 AI가 사람보다 더 잘한다면, 종국에는 ‘표현’이 남는 것 아닌가? 이전에는 단순한 ‘메모’로 표현하던 AI 모델이 ‘대화’ 형식으로 표현을 하니, 그 효과 측면에서 엄청난 질적인 상승을 달성한 것 같다.
그러면 나는 내 생각을 지금 어떻게 표현하고 있나. ‘지능’이나 ‘사람됨’이 사람의 머릿속에 존재하고, 이는 ‘의사 표현’을 통해서 발현된다는 가설을 믿었던 시절이 있었다. 어떤 사람의 사람됨, 인격을 보여주는 것이 그 사람의 말과 글이라는 생각은 사실 지금도 크게 틀리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가설에는 분명하게 ‘인격’이나 ‘사람됨’의 ‘일부’만을 ‘의사 표현’이 보여준다는 가정이 깔려 있었다.
하지만 AI의 시대에서 이 가정은 수정되어야 할 것 같다. ‘인격’이나 ‘사람됨’을 보여주는 것이 그 사람의 말과 글이 아니라, ‘그 사람의 말과 글이 곧 그 사람’이라는 가정이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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